칼자국(4)
- 오빠... 오빠 뭐 해?
...나... 내가 뭐 할까 난 죽으려고 하는데 하지만 그 말은 할 수 없으니까...
-...그냥 있지 음 디게 오랜만이네... 어떻게... 전화한 거야?
- ...오빠... 사실 나 무서운 꿈 꿨어... 그래서 오빠한테 전화한 거야...
... 아우 얘야... 왜 이러니...정말...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솟았다. 왜 그러는거야 눈치없게. 너는 앞으로 무서운 꿈보다 더 무서운 걸 보게 될 텐데.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이가 덜덜 떨렸다. 쉴새없이 연한 눈물이 흘렀다. 왜이럴까 얘는. 평생 이 대화를 잊지도 못할 텐데.
-ㅇㅇ아... 내가 좀 할 일이 있어. 사실 어디로 갈 준비를 좀 하려고 했거든. 내가
동생은 갑자기 말을 끊더니, 새삼 맑은 목소리로
- 응? 어디?
...하훔.. 속으로 깊은 탄식이 터진다. 몇 년 동안 연락도 끊겼던 애가 갑자기 연락와서는... 갈길 바쁜 사람인 내 발목을 잡고 매달린다.
사실 동생은 내 껌딱지였다. 지겹게 날 따라다녔다.
아버지가 불 싸질렀던 다세대 여인숙 대문 위 콘크리트 옥상에는 아이들이 벽을 타고 기어오르기 좋게 칸칸이 굴곡져 있었고 내가 그 위에 올라 동네 전경을 느긋이 바라보려 하면 빨빨거리며 기어 나와 내 옆에 주저앉아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날은 그러면 안 됐다. 우리 가족이 머무르던 호실 건너 건너 방에는 화장이 무서운 아줌마와 키가 큰 형이 살고 있었는데 벽 하나 가득히 로보트 프라모델로 가득히 채워 있었다. 우리 집은 당연히 그런 호사를 누릴 환경이 아니었다. 우리 집의 문제는 아이들에게 있어 보다 더 생존의 문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일고여덟살 꼬마에게 로보트와 생존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빙고! 당연히 로보트다.
나는 그날 대문 위를 오르기 전 가끔 그 방 문이 살짝 열려있을 때 흘깃흘깃 눈여겨 보았던 새빨갛고 윤기 좔좔 흐르며 광택 나는 로보트 프라모델 하나를 몰래 훔쳐 연탄 창고에 숨겨 놓았다. 수많은 로보트 중 하나라서 눈치 채기 힘들거다. 나는 완전 범죄를 꿈꾸는 치밀한 범죄 신동이었지만 솔직히 조금 두려웠다. 키 큰형한테 들키면 어쩌지? 그래서 대문 위로 올라가 그 형이 오는지 확인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보고 싶었다. 형이 화를 내면 메롱하고 혀를 내밀며 다시 갖다 놓을 생각이었다. 보통 우리는 그러면 용서를 받았다. 기껏해야 머리 한대 쥐어박히거나 뺨 한대 맞으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내 옆에 껌딱지가 그 모든 범죄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슬슬 키 큰형이 언덕 위를 올라오는게 보였다. 난 조금씩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난 도둑질을 한거다. 이거는 단순히 머리가 쥐어박히는 걸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경찰서에 끌려갈지도 모른다. 겁에 잔뜩 질린 나는 자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키 큰형이 어느새 문 앞으로 가까이 왔다.
- ...형아...
그때 동생이 키득키득 웃으며 소리쳤다.
- 오빠. 우리 오빠가 오늘 뭐 훔쳤게?
눈이 동그래진 키큰형은 부랴부랴 방으로 뛰어 들어가 한참 있다 나오더니 우리 오누이를 내려오게 하고 강제로 무릎 꿇렸다.
- 이런 도둑년놈들!!
키 큰형의 눈빛이 아까 내가 훔쳤던 로보트의 빨간 광택보다 훨씬 더 붉게 충혈되어있었다.
그래, 내 이럴 줄 알았다. 나는 무시무시한 죄를 저지르고 만거다. 키 큰형은 경찰을 부를지도 모른다. 나는 벌써 눈물이났다.
키 큰형은 바득바득 이를 갈더니 우리 둘을 번갈아 보다가 동생의 팔뚝을 잡고 끌고 가려한다.
-아 형 저기요...
다급해진 내가 소리쳤다.
- 제가 가져갔어요. 그냥 장난치려고 한 거예요 연탄 창고 안에다 숨겨 놨어요... 다시 갖다 놓을게요...
키 큰형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동생을 잡던 팔을 풀고는 우악스럽게 내 어깨를 움켜잡았다.
- 그래. 그러면 네가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