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포스코 ‘9억 비리’ 환수의 일등공신, 알고 보니 ‘숙청된 말단 사원’의 기록이었다
- 32년 만에 드러난 반전... 포스코, 현장 일지 대조해 비리 적발하고도 정산 때는 방치
- "성품일지라는 정답지 옆에 두고 가짜 전표에 결제"... 관리 부실 책임 떠넘기기 의혹
[포항=지니 기자] 1994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포스코 무연탄 운송비 과다 정산 사건’. 당시 포스코는 외부 운송업체 한진통상의 전표 조작으로 약 9억 3천만 원의 손실을 보았다고 발표하며, 관련 현장 사원들을 비리 공범으로 몰아 숙청했다. 하지만 32년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의 ‘진짜 스모킹건’이 발견되면서 포스코의 ‘꼬리 자르기’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 9억 3천만 원, 어떻게 찾아냈나? ‘현장 일지’가 정답이었다
당시 포스코 감사팀이 한진통상으로부터 9억 3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환수할 수 있었던 결정적 근거는 다름 아닌 현장 사원들이 작성한 **‘성품일지’, ‘반장일지’, ‘주임일지’, ‘소결일보’**였다.
조사 결과, 포스코는 감사가 시작되자마자 한진통상이 제출한 허위 전표와 현장에서 작성된 공식 기록(성품일지 등)을 대조했다. 기록상 들어온 무연탄 대수와 전표상 대수의 차액을 계산해내자 9억 원이라는 정확한 피해 금액이 산출된 것이다. 이는 포스코가 비리를 잡아낼 수 있는 **‘완벽한 대조 데이터’**를 이미 내부적으로 보유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 “정답지 두고 오답에 결제”... 포스코의 치명적 직무유기
사건의 핵심은 포스코가 왜 이 대조 작업을 ‘정산 시’에는 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당시 현장 사원이었던 박형근 씨는 “우리는 매일 정직하게 성품일지를 작성해 보고했다. 포스코 기술팀과 정산 부서가 이 일지만 확인했어도 9억 원의 피해는 절대 발생할 수 없었다”고 분개했다.
결국 포스코는 평소에 정산 시스템을 방치해 사고를 키워놓고, 감사가 터지자 자신들이 방치했던 그 일지를 꺼내 들어 금액을 산출한 뒤, 모든 책임을 ‘전표에 확인 사인을 해준’ 말단 사원들에게 떠넘긴 셈이다.
■ “백지수표에 사인?”...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건넨 비정한 프레임
당시 포스코 감사위원장은 박 씨에게 “백지수표에 사인한 것과 같다”며 사직을 강요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들은 “원본 장부(성품일지)를 가진 은행(포스코)이 장부 확인도 안 하고 돈을 내준 것인데, 확인란에 사인한 사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전형적인 책임 전가”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2021년 포스코 윤리경영실은 박 씨에게 “금품수수나 공모 사실이 없었다”고 공식 답변했다. 이는 박 씨가 비리범이 아니라, 포스코의 행정적 무능과 직무유기를 덮기 위한 ‘희생양’이었음을 방증한다.
■ 32년의 한(恨), 이제 법정에서 진실 가려질 것
박형근 씨는 최근 포스코를 상대로 명예 회복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박 씨는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을 통해 1994년 당시 포스코가 9억 3천만 원을 계산할 때 사용했던 ‘비교 대조표’를 확보할 계획이다.
박 씨는 “내 손으로 쓴 일지가 나를 비리범으로 만드는 도구가 되었지만, 이제는 그 일지가 나의 무죄를 증명하는 칼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며 끝까지 싸울 의지를 밝혔다. 거대 기업의 시스템 부실을 개인의 죄로 둔갑시켰던 30년 전의 진실이 이제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