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추억 공유해요.
#정보 #추억소환
<그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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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집집마다 배달되는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집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 신문배달은 학생들 알바로는
제일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개발연대 시절
어려운 가정환경에 보탬이 되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배달을 했던 소년들 중에는
사회의 큰 나무로 성장한 이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가판식으로
신문을 받아다 파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학생이 아니라
이렇게 노인들도 돈 얼마라도 벌려고 나오는 분도 계셨습니다.
보급소에서
각자의 구역에 해당하는 신문부수를 챙겨서
배달에 나섭니다.
대개는 총무들이 신문부수를 세어서 줍니다.
1973년도 월간 신문 구독료가 350원이었을 때 보급소에는 200원에 들어옵니다.
고정 월급제인 경우 배달소년이 갖는 액수는 정해져 있지만 원고제라고 해서
자기가 돌린 것만큼 가져가는 아이는
돈은 더 벌 수 있지만 위험부담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지라씨라는 광고지를 많이 끼우지 않았는데
지라씨 1장당 1원인가를 광고주가
보급소에 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간신문으로는
당시 조선일보와 한국일보밖에 없었는데
이 두 신문보급소끼리 싸움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게 남의 신문 빼오기.
한국일보 배달된 집 마당에 있는 신문을 빼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집에선 신문 안 왔다고 신문사에 전화하고 보급소엔 페널티 얼마가 매겨집니다.
이게 몇 번 반복되면 그집에선 그 신문을 끊죠.
그때쯤 가서 그 집에 조선일보 구독하시라고 하면
그집 주인은
"힌국일보 봤었는데 툭하면 신문이 안 와서
이제 바꿔야했는데 잘됐네!"
이렇게 간단히 구독자 한 명 늘리는 겁니다.
보급소에선
한 달 다른 신문 빼오는 목표까지 정해놓고
우수도둑에겐 선물포상까지 했습니다.
당시
신문배달 소년들의 가장 많은 취미는 우유 빼먹기.
그때는 대부분 단독주택이었고
우유는 소위 있는 집에서나 배달시켜 먹는 사치품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