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세때부모권유(꼬임)로 음식점시작해 여러번 창업했는데 그중 3번을 대박집 만들었었죠
제기준의 대박집은 월수입이 대기업 초봉의 10배이상이 기준입니다 26세에 부모꼬임으로 다니던 직장그만두고 처음시작하여3년반동안 쉬는날없이하루서너시간자면서 열심히 했네요 팔팔한젊음을3년넘게 작은공간에갇혀 장사만하다보니
젊은 나이에 뭐하는건가싶어 가게를 3천만원받고 팔은돈으로 개포동 아파트 2채사놓고 직장다니려했었죠 장사하면서 부동산 책사보면서 부동산전망에대해 안목을 키운상태였습니다 그런데부모가 형과 여동생 결혼시키려면 집이 있어야한다면서 집값이6200만짜리인데 부모는2천5백만있으니
돈을 달라해서 3천만원을 갖다바쳤었죠 집이름은 한푼 안보탠 형이름으로 한다길래 아버지이름으로하라고 했더니 부족한 천만원은을 형이름으로해서 10년 장기대출로갚게한다나? 뭐라나?
돈문제로 가족형제 다투는것자체를 싫어해서 그러려니 그냥 넘어갔지요 부모집사는데 가게판돈주고나니 저한테는1700정도 있었는데 허전하더라구요 매입한집이 집장사가 건축해 겉만보기좋은 다세대, 부동산에대해 공부한저로서는 아니다생각했지만 엄마는 맘에들어 꼭사고싶다는 그고집을 제가 받아들일수밖에(아주 효자났네~빙다리) 그래서 이건 아니다싶고 내생각이 옳다는걸 증명해보려고 투자가치있는집과 아주적은돈으로 투자해보려고 안양인덕원에분양사무실로 직접가서 반지하를 5십만원계약금걸고 전세끼고
대출받고해서 생전처음 투기인지투자인지를했네요 그로부터1년후 부동산에서 전화가와 팔았더니 1750 만원 남더군요
그래서 부동산공부한거와 내생각이 맞다는걸증명하고끝.
저는 그집에 주소만올려놓고
잠은 몇번 안잤구요
형과누나는 뭔일인지
결혼하고 교대로 몇년씩 살더라구요
상황이 안좋으니 그런가보다했지요
90년에 집산후 저는결혼후 93년에장사하려니 돈이부족하여
집담보로 천만원만 대출해달라고했더니 부모와형이거절.순간 서운했지만 빛지는게 싫은사람도있겠지 하는생각으로 되돌아옴.그래도 이리저리부족한돈 맞춰 교문리에서 장사시작했는데 잘되던중 전원카페에 생각이 동하여 95년초에 웃돈받고 팔아 금남리에 기초파는 상가를계약하고 준비하던중
자금부족해서 부모와형한테
1천만원대출 부탁했더니 또거절하더라구요 서운하고 감정도 상했지만 큰일을 앞에두고 싸우고
감정 소모할시간없다는생각으로
되돌아나와 여기저기 돈빌려가며오픈준비하는데 집중하였습니다
기대했던대로 카페가2주만에 정상궤도에올라 북한강라인에서 두번째로 잘되는집 등극했어요
하지만 20개월만에 그유명한IMF
서울가서 애들 교육시켜야한다는
와이프성화에 2억돈빛갚고나니빈털터리로 이사후
친구의도움으로 건대입구역에 10평 매장으로 스테이크메뉴개발해서 오픈했는데 10개월만에 유명해졌어요 큰매장으로옮기고싶어 투자받아 신촌에서 스테이크전문점매장 오픈해서 6개월만에
정상궤도올리고1년만에 2시간이상줄서서먹는 전국맛집으로 유명한매장ᆢ근데요
광우병파동으로
근처에있던 30억투자한 베니건스
폐업 근데 저는 버티느라 힘에부쳐 지분주고 재투자받고 동업
하다 매장 뺏기고ᆢ힘들게 지내오다ᆢ3년전모든걸털어 안암동에 스테이크전문점 오픈했었죠
자금이없으니 안좋은 위치여서 안하하려고 했지만 와이프가 이자리아니면 안한다길래(돈은 와이프가쥐고있었음) 방송에 내보내준다는 아는동생 말도있고해서
어렵게오픈했는데 역시나 였어요
그래도 왔던손님들 반응이좋아
있는돈없는돈에 빌려가면서
탈탈털어가며 1년가까이버텼더니 장사제일안된다는 11월 말쯤되니 예약늘고 문의전화도늘고
장사안되던주말에 연인과 가족들오고 12월1월성수기도 다가오고요 이제야 1년만에 자리잡고 일어서는구나 했는데ᆢ~
한숨돌리고
있는데ᆢ~
며칠후 계엄!!~
그전에 자리잡은집들은
파도를 넘기지만.이제 출발하는 저로서는 제대로
풍랑 맞은거죠?^^
계엄날부터 역시나 손님뚝
그날부터 고민은또다시 시작되고요
요즘같이 어려운 시대는 획기적인 아이템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10년전 생각해서품고있던
자동화 구이기계생각에 잠못이루며 매일고민하고 머리속으로 그려가던중 설계도가 조금씩 그려저
가며
수개월을보냈더니 도면완성후 부품찿아 청계천,영등포 구로구를 뒤진끝에 혼자서도 만들수있다는 생각으로 뛰어다니며투자조금받고 해서 지금은 횡성에서 기계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만들고있는기계는 안암동매장에서 돈벌면 기계제작전문가에게 큰돈 들여서라도
의뢰해 만들려던 기계였습니다
이없으면 잇몸으로 라는말있듯이
전문가도아닌 제가 착오겪어가며 엎었다 뒤집었다하다보니 돈도더들어가고 힘들지만
하나하나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계엄으로되려던 장사가안되고 이제 망했다생각들고
안암동 매장폐업하고
지나온 시간들 되돌아보는데
한달 수천만원수익내던 북한강 전원카페 김영삼이가~
신촌 그유명했던 스테이크전문점 이명박이가~
마지막탈탈털어 이제막 일어나려던
스테이크전문점을 윤석렬이가~
그놈들 누가 찍어줬어요?
정치하는사람들 잘 뽑아야 합니다
두고보자 나쁜인간들!!
하면서요
그리고 몇년전에요
기계만들어 장사하려는데 돈이없어
평택에가서 형을만나두번을 옛날에 집살때 매장팔아3천만원 보탠거 넌지시 얘기를했는데 모르는척하더라구요 며칠후 전화로 통화하면서 직접적으로
얘기를했는데 자기는모르는일이고
할말있으면 부모한테 얘기하라고 하더군요
아버지는 방광암에 전립선암으로 엄마는대장암으로
병원을 얼마나 다녔겠어요
그병원을 제가 다 다녔거든요
어이없고 화가나서 쌍욕을 해대고 전화끊었네요
집은 지 명의로 되어 있으니
죽은부모한테가서 말하라니!!
그리고 작은누나한테 상황 얘기하려고 전화했는데
안받더라구요 안받을 시간도아니고 안받을일도없는데ᆢ
그다음날 전화가와서는 형한테얘기들었다면서
저보고 내지분50프로인데 현재그집가치가5억정도인데그동안 제가 2억5천을 가져갔으니 돈얘기는 하지말라면서 재판걸면 자기들이 합심해서 증인을
설거라면서요 현재그집은 막내남동새하고작은 누나년이
살고있어요
작은 누나라는것은 서울에서 월급35만원받으며
성당유치원밥해주며 힘들게살때 소스공장보증금 5백만원도없을때 그돈빌려주고 시설꾸며주고
벌어갚으라고 도움주고 그렇게해서 공장운영해
제가 높은가격에 구입해주고 남편이 직접 배달하니까 매일2만원씩따로챙겨도주고 월35만원벌던 사람을 월5백도벌고 많이벌때1천만원도벌게해서 딸둘시집 보낼수있게 해주고 남편고향인횡성 내려와집짓고장사할돈도 마련하고 그리해 줬는데도
뒤통수를치네요
내가재판걸어 이기면 쫒겨날까봐 그렇게 형하고
짜고 나한테 그런식으로 말하는거죠
누나것까지 그러니까 순간정신이번쩍 나면서 그동안부모가 특히 엄마라는 사람이 나에게했던 말들과행동들이 떠오르면서
그동안 나는 앵벌이로 살았구나
생각이들며 분노가 차오르더군요
처음 장사시작한계기도 인테리어사무실다니는데월십만원받았어요 6개월다니면서 집에돈한푼안갔다줬죠 그랬더니 어느날 나를불러 직장다녀야 돈못버니까 장사하라면서ㆍ돈없다고하니까 계돈타서줄테니 매달갚으라면서요 매장투자비1600만원을
3년동안 갚은거죠 그때는 중학교때부터 돈벌게 많이도와줬거든요 새볔에 장안동 밭에서 열무배추밭아다가 잘팔리게해주고 고등학교때는 전곡으로 식당짬밥걷어다가 물기짜서버스에싣고 매주 날라다주고 겨울방학이면 전곡내려가
한탄강 건너 산에가서 땔감나무장작 어께띠에 등짐으로 해나르고(그때 지게나 헝겁으로허리받침이라도해줬으면 지금 허리땜에 고생은 안할듯)고3부터 군입대전까지겨울3년간찹쌀떡장사하며 하루도 안쉬고 다팔때까지 안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매일10만원 전후로 가져다줬구요
군입대전에 저한테말도없이 상왕십리 버스정류소앞에 구멍가게 얻어놨으니 장사하라고해서 수익더내려고 경동시장뒷골목 공산품파는도매상가서 음료수를 짐자전거로실어날라 팔고해서 돈벌어주고
구입대직전에 퀀리금붙여 가게넘기고
그런 돈맛을봤으니 저를 그냥놔두지않고 음식점차리게해서 이용한거죠
제가 그리고나서 화병에 뇌경색이 오더라구요
어떻게해버리고싶지만ᆢ
제주도고유정살인사건 뉴스에 나오면 사람이 어떻게 계획적으로
사람을죽일수있을까 생각했는데
그의문점이 풀리는 계기가 됐어요
그런살인사건하고는 틀리지만요
하지만
아직 저는 할일이 있으니 참고지내며
기계제작에 모든걸 걸고있습니다
당근에서 사는이야기 보다보니
저도 속얘기하고싶은생각이들어 적었습니다
즐거운얘기는 아니지만
가슴이 매일답답해서 하소연 차원으로
글을써봤습니다
즐겁고 잼있는얘기 아니라서
읽어주신 분들한테 감사하고 죄송하단말씀 올립니다
생각떠오르며 글쓰는중에도 생각나
화가올라오고 손이떨려
두서도없었습니다
이해바랍니다
좋은하루되시길바라며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