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말했다.
바람을 피러 가자고...
싫다고 했지만 그녀의 계속된 요구에 결국 나의 고집은 꺾였다.
인천 연안 부두로 향하는 차 안에서 보는 그녀의 얼굴은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자세히 보니 그녀도 이젠 머리카락이 한두 개 흰 게 보인다.
고고하던 그녀도 세월의 무게 만큼은 피할 수 없었나 보다.
이렇게 나이가 든 사람들이 바람이 뭔가.
모텔에 들어갈 때 사람들은 우리를 어떤 시각으로 볼까.
그 나이에 모텔에 간다면 불륜 남녀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것인데...
하기야 차 유리에 선팅이 잘 되어있으니 보이진 않겠지.
동해에 비교하면 좀 여성스러운 서해는 솔직히 싫다.
빛깔도 그렇지만 연안 부두엔 걸을 곳이 마땅히 없다.
분위기에 약한 여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백사장을 걸으며 속삭이는 말을 하면 금방 넘어가는데 말이다.
우리는 전화로 예약한 모텔에 들어갔다.
조그마한 침대와 화장대가 있는 평범한 모텔이었다.
커튼을 젖히니 어디를 가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배에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저 배를 타고 멀리 항해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지긋지긋한 아내를 벗어나 그녀와 함께 먼 나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것이 운명이고 뒤에 남을 사람들의 인생까지도 망가뜨리면서 항해를 할 명분이 없지 않은가.
여장이라 할 것도 없지만 보따리를 놔두고 밖으로 나왔다.
즐비하게 늘어선 횟집들 중 동해의 어촌 이름을 한 횟집으로 들어갔다.
왠지 그 집은 동해에서 갖고 온 고기를 줄 것 같았다.
싱싱하고 힘 있는, 그래서 오늘 밤 치를 역사적인 순간에 그 힘을 마음껏 쏟을 체력을 보강하기 위함이다.
어차피 무엇을 먹던 계산은 그녀가 할 터인데 크고 싱싱한 녀석을 골랐다.
저 녀석의 눈빛을 보니 오늘 밤은 변강쇠가 될 게 확실하다.
내게 흐느끼며 매달릴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빙긋이 웃는다.
음흉한 내 생각을 그녀가 알 수 없겠지.
나의 진가를 알면 자주 오자고 하면 어쩌나 하는 너무 앞선 듯한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더 많은 회가 나왔다.
아무래도 둘이 먹기엔 양이 많은 것 같다.
술잔이 오가며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먹는 바닷가의 횟집 ㅡ
어느새 밖은 어둠이 깔려 서해라는 흐린 바닷물은 보이지 않았다.
홍조를 띤 그녀의 얼굴이 시간이 흐를수록 아름답게 보인다.
어떤 책에서 보았던 글이 생각난다.
"촛불이 켜지고 단둘이 있는 방에서 아름답지 않은 여인은 없다."
명언이다.
정말 그녀가 아름답고 요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몸짓도 알 수 없는 흥분을 자아내며 교태가 흐르기 시작한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아닌 그녀의 오랜 세월 전에 맡았던 체취가 기억되었다.
우리는 서둘러 내일이면 헤어져야 할 짧은 시간을 최대한 후회 없이 보내야 한다.
이 시간에는 아무도 생각 않고 오직 둘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오지 않았냐는 말이다.
밤의 대담함과 술의 여유가 있어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문이 잠김을 확인하고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려 했다.
반항하는 그녀 ㅡ
이를 닦고 오라고 한다.
급한데 이를 왜 닦아?
서둘렀다.
샤워까지 시간은 몇 분도 안 되어 끝냈다.
함께 하자고 해도 그녀는 반대했다.
내가 나오자 그녀가 들어갔다.
대충 끝내지,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목욕하는 시간은 길고 길다.
아마 왕에게 헌신하려는 시녀의 마음일까?
이윽고 문이 열리고 그녀가 나왔다.
아!~
그녀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머리와 가슴에 수건을 두른 모습 ㅡ
이 세상 어떤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도 구사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안고 걸어왔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이 나는 바빴다.
머리와 가슴에 걸친 수건을 벗겨내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본 게 언제였던가!
눈부셨다.
내일의 일, 어제의 일, 먼 장래의 어떤 일도 없었다.
나는 오직 그녀에게 무언가를 말한 것 같았고, 그녀도 뭐라고 말한 것 같았다.
그 얘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건 오직 아내에게 누리지 못한, 집에서 만끽할 수 없던 해방감으로 오늘 밤의 쾌락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밖에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말하며 내 어깨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거친 숨결과 배를 타고 먼곳을 항해하는 선상에서 내 몸은 땀에 젖어 어느새 아득한 어느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끈적이는 땀에 젖은 그녀를 팔베개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나른한 피로감에 젖어 행복한 잠과 꿈속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날이 밝아왔다.
창으로 비치는 눈부심에 일어나 문을 여니 비릿한 바다 냄새가 전해온다.
나는 꿈인 듯 간밤의 몽롱한 생각을 기억하려 했지만, 희미하지 모두가 또렷하지 않다.
목이 말랐다.
몇 컵인지 배가 출렁이게 마셨다.
"벌써 일어났어?"
아니,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다.
어젯밤의 그 선녀는 어디를 갔을까!
침대 위에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내가 있었다.
헝클어지고 침을 흘리는, 그리고 석삼(三)자로 접혀진 배를 보자 난 비로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천당과 지옥은 이런 차이일 것이리라!
나는 어젯밤, 원효 대사가 어두운 밤 인골(人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으신 진리의 의미를 알았다.
아내와 연인의 차이는 이런 것인가.
결혼 기념일에 아이들과 아내의 꼬임에 빠져 나는 인천 연안 부두에서 또 하나의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