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에 보물이 몇 개 있었다.
아이들과 구슬치기 내기를 해서 따거나 딱지 등을 따면 언제나 내 보물 창고로 감추곤 했다.
그 보물 창고는 안방으로 들어가는 마루 밑이였으며, 그곳을 넘보는 자는 나의 거센 저항을 받아야 했다.
나의 악다구니는 감히 추종할 자가 없었으며, 내게 밉보이면 무슨 일이든 피해를 입혔으니, 나는 우리 집에서 기피 인물 제 1호였다.
어느 날이었나?
웬 키가 멀뚝한 녀석이 우리 집을 드나들더니 큰 누나와 결혼을 한다고 했다.
큰 누나는 내 보물을 깨뜨린 주범으로 곧 나의 보복을 받아야 하는데..‥!!
큰 누나는 내 보물 중 보물인 코카콜라 병을 깨뜨렸다.
누나는 사이다 병으로 쓰라고 했지만, 사이다 병은 미끄러워 빠질 염려가 있으니 허리가 잘록한 콜라 병으로 기름을 담으려 했다.
그때만 해도 병을 구하기란 큰 맘을 먹고 음료수를 사야만 병을 구할 수 있었던 때라, 누나는 내가 어디서 주워온 콜라병을 보고는 달라고 며칠을 따라다녔었다.
그 키 큰 녀석이 우리 집에 오는 날, 누나는 기필코 콜라 병을 빼앗겠다며 아침부터 나를 졸랐다.
큰 됫병으로 부침개를 부치려니 힘이 들었겠지.
아니면, 남편이 될 그 자에게 콜라 병으로 기름을 부어 부침개를 부치는 모습을 보이려 했음이니라.
학교 간 사이에 아무래도 보물 창고가 습격 당할 것 같아 장독대 뒤에 감추어 놓고 가려다 그만 누나에게 들켰다.
누나는 빼앗겠다며 달려왔고, 나는 빼앗기지 않으려다 그만 담벼락에 부딪혀 보물이 깨어지고 말았다.
매형이 될 그 자식이 온다고 법석을 떨던 집안에서 우는 나를 달래 학교를 가라고 했지만, 나는 책보를 팽개치고 뒷산으로 올라가 펑펑 울기만 했다.
"씨팔 간나, 시집을 가면 갔지 콜라 병은 왜 깨뜨리고 지랄이야, 씨팔!"
누나를 향한 내 저주는 독기 어린 눈으로 집을 내려다 보면서 그 자식이 왔다 갈 때까지 계속됐다.
그 자식은 우리보다 못 사는 윗 동네 최씨네 집 아들인데, 국민학교를 나와 객지에 나가 출세를 한 자식이었다.
그 녀석이 동네 전기 공사를 한 녀석이었는데, 아버지는 녀석이 대단한 놈이라고 칭찬을 하며 다니셨다.
녀석은 허리에 뻰치 찬 모습을 보고 그것을 꺼내 선을 자르고 잇고 하며 전기 불이 들어오자 아버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다.
어디서 저런 기술을 배웠느냐며, 녀석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큰 형 친구) 어머니와 아버지는 먹던 김치가 아닌 장독대로 달려가셔서 새 김치를 내오곤 하셨다.
그리고는 독에 담은 막걸리를 꺼내 먹으라며 갖다 주시곤 했다.
그 녀석만 오면 귀빈처럼 대하시는 모습이 내겐 달갑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가설 극장이 들어왔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하게 흰 천으로 둘러친 그곳은 '장화홍련'이 개봉되고 있었던 날이었다.
그날이 누나의 평생 운명을 결정진 중요한 날이 될 줄이야 · ‥ !
누나는 녀석과 극장 구경을 갔고, 오는 길에 동네 사람들에게 들킨 것이다.
누구네 집 딸내미가 누구네 집 아들과 연애한다는 이야기가 동네에 퍼졌다.
저녁만 되면 딸들을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엄명을 내리신 아버지의 귀에 그 소문이 들어갔다.
아버지는 그 소문이 퍼지자 진실이고 거짓이고, 이미 몸을 버렸다고 단정 지으시곤 막무가네로 매파를 보내어 서둘러 결혼을 시킨 것이다.
그 녀석 손만 대면 전기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시고는 아버지는 벌써부터 사윗감이라고 찍으셨을 것 같은 생각이다.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말처럼 결혼은 순식간에 치러졌다.
누나는 안 간다며 울고불고 난리 법석을 떨었지만, 아버지의 엄명을 거스르진 못했다.
싱글거리는 녀석을 앞세운 가마가 집 마당을 떠나갔다.
연지 곤지를 찍은 누나는 수줍은지 눈을 감고 가마 안으로 들어가자 문을 열어보지도 않고 떠나갔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누나를 영원히 빼앗기는 것 같은 마음은 슬퍼지기 시작했다.
조청을 묻힌 과절을 들고 뒷산으로 뛰었다.
눈물이 앞이 보이지 않게 흐르고 있었다.
무언가 큰 게 내 가슴을 빠져나가 허전하고 텅 빈, 형언하기 어려운 외로움 같은 마음은 울고 싶어졌다.
내가 뒷산으로 뛰는 이유는 누나를 좀 더 오래도록 보고 싶었던 때문이었다.
그렇게나 미운 누나였지만 영원히 못 볼 것 같은 마음은 자꾸 더 보고 싶어졌었다.
아지랑이 속으로 누나를 태운 가마는 가물 가물 멀어져 갔다.
산구비를 돌아 누나를 태운 가마와 일행이 사라지자 누나가 사라진 곳을 향해 소리쳤다.
"씨팔 간나야! 콜라 병이나 물어내고 가! 엉~엉~"
나는 애꿎은 소나무를 발로 차기도 했고 주먹으로 때리기도 하다,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날은 나만 운 게 아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신 아버지도, 어머니도, 손님들이 다 가시자 울기 시작했고, 영문도 모르는 동생 녀석들도 울기 시작했으며, 마치 우리 집은 초상집처럼 됐었다.
시집을 가면 친정과 자연히 멀어지는 걸까!
잠시, 한 동네 살던 누나는 멀리 이사를 갔다.
드문드문 올 때마다 아이가 하나 하나 늘어갔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때, 소나무를 부여잡고 울던 녀석도 어른이 되어갔고, 결혼도 했고, 아이가 태어났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며 나이를 먹어갔다.
50여 년의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내게 누나를 빼앗아 데려간 녀석은 아들 딸 넷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다.
나의 누나에게 자식 부양이란 무거운 짐만 남기고!!
그래서 나는 매형이란 사람에게 그 녀석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사랑하는 누나를 데려갔으면 남자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지, 왜 먼저 갔느냐고 말이다.
어제 ㅡ
누나는 택배로 청국장을 띄워 보내면서 밥에 넣어 먹으라며 콩도, 손수 길러 짠 들기름도 부치셨다.
포장지에는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누나의 울퉁불퉁한 글씨,,,,, 내 주소와 이름이 적힌 포장지를 보았다.
동생들 때문에 중학교도 못 간 누나의 서투른 글씨 ㅡ
내 눈에 눈물이 흐른다.
농사를 지으시며 손가락 하나 성한 데 없는 누나의 손으로 쓴 글씨 ㅡ
글씨 하나 하나 쓰시면서 얼마나 흐믓하셨을까!
어린 동생 녀석들이 도시에서 힘들게 사는 데 보태줄 수 있으니!!
나는 포장지의 글씨를 어루만지면서 누나의 따뜻한 사랑과 체온을 느낀다.
오늘 아침 ㅡ
아내는 내가 누나가 보낸 청국장으로 아침을 먹다 대변 본다고 화장실을 간 이유를 모를 것이다.
자꾸 눈물이 흐르려고 하는데, 대변 본다고 말하고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았다.
세수를 하고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동생아! 너희들은 나에게 자식이나 다름없어! 더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해!"
간밤에 누나는 잘 받았느냐며 전화를 하셨다.
동네 아낙네들과 술을 한 잔 하셨노라며 울먹이며 전화를 하신 목소리가 들려온다.
외로움이 절절한 누나의 겨울 이야기는 무척 길었다.
"누님! 통화료 많이 나오니 그만 끊으셔요."
그래도 누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이어졌고, 오래 전의 '콜라 병'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자식들 모두 도시로 가고 없는, 텅 빈 동강 옆에 홀로 계신 누나의 강원도 겨울은 길고 길 것이다.
동생들을 업고 누나가 부르던 바위 고개의 노랫말을 웅얼거려본다.
"바위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 "
지금 생각해 보면 누나는 그 노래를 소프라노를 부르는 성악가처럼 부르곤 했다.
지금은 전국 노래 자랑에도 출연하신 경력과 함께 레파토리가 다양하지만, 예전 우리가 어릴 적엔 그 노래만 들은 기억 뿐이다.
누나는 지금도 가끔 밭 일을 하다 그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누나가 살아온 인생 ㅡ
누나는 우리에게 말하지 않아도 한 맺힌 그리움이 많은 분이다.
우리 어머님도 '정선 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시던 분이었다.
그래서 누님도 노래를 잘하신다.
쌀밥 한 말 먹고 시집가면 부잣집이던 가난한 산골 동네 ㅡ
가난 때문에, 동생들 때문에 중학교도 가지 못했던 누님의 한 ㅡ
동생들 때문에 평생을 고생하신 누님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해 드린 게 없다.
동강은 겨울이 유난히 길다.
깎아지른 높은 절벽이 많은 탓일까?
강 줄기를 따라오는 강 바람은 봄이 와도 가슴을 파고드는 매서움이 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연세가 80이신데, 올해 누님이 팔순이시다.
연지 찍고, 곤지 찍고, 가마 타고 시집가던 날이 어제만 같은데...!!
길고 긴 강원도 동강에 겨울이 끝나도 우리 누나는 언제나 누구를 그리워 하시며 노래를 부를 것 같다.
콩을 심은 밭두렁 곁에 매형의 무덤을 보며 우리 누나는 그 노래를 쉬지 않고 부르실 것 같다.
올해도 누나는 내게 줄 콩을 심고 밭을 메며 그 노래를 부르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