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 찬바람이 불면 개가 빙긋이 웃던 만화를 본 기억이 난다.
여름이 가면 한 해를 더 산다는 개의 안도하는 마음을 작가가 표현했으리라.
여름의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가을이 되어도 보양을 하려고 무슨 짓인들 못하랴!
오늘 나는 유년시절에 아픈 과거의 얘기를 하려한다.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읽혀 나의 생각에 공감을 갖는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내가 사랑하던 너구리를 위해 이 글을 쓴다.
한 편, 개를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님과 일곱 남매.
나는 형 둘, 누나 둘, 동생 둘, 다섯 째로 태어났다.
다복하다 하겠지만 배고프던 어린 시절 ㅡ
어느 날, 우리집에 종이 드럼통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것은 미국에서 원조로 보내진 구호품 분유였다.
우리는 우유인 줄 모르고 서로 많이 먹으려고 아귀 다툼을 하며 먹었다.
그날 밤 혹독한 댓가를 지불해야 함을 모른 체...
동물성 식품을 처음 접하는지라 우리는 먹은 것 이상 뒷간(화장실)에 설사로 반납해야 했다.
그 후 한동안 우유는 우리에게 잊혀져 갔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장에 가셔서 주먹만한 강아지를 가지고 오셨다.
어미 품을 떠난 강아지는 밤새 얼마나 우는지, 우리는 궁여지책으로 잊었던 우유를 기억해 내곤 강아지에게 먹였다.
강아지는 우리에게 무서운 우유를 얼마나 잘 먹어주었는지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 드럼통이 다 비워질 무렵 강아지는 동네에서 당할 개가 없을 정도로 큰 개로 변했다.
나는 그 개를 '너구리'라고 명명하고 함께 산과 들을 뛰어 놀았다.
동네 못된 형들도 너구리와 함께 있으면 내게 얼씬도 못했다.
전쟁 놀이에서는 언제나 선봉에 서서 적들을 무찔렀다.
너구리가 앞장서면 적들은 언제나 혼비백산 줄행랑을 쳐야만 했다.
학교에 간 날이면 언제나 동네어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숨가쁘게 뛰어왔다.
"헝, 헝아! 엄마가 너구리를 팔았어 ㅡ"
나는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뛰어갔다.
집엔 너구리가 없었으며 동생을 안고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우리집에서는 구멍가게를 했고, 담배를 사러온 헌병을 너구리가 깨물었다고 했다.
권총을 꺼내 마루 밑에 있는 너구리를 쏘려하자 어머니는 젖먹이 어린 아이가 있으니 제발 총소리만은 내지 말아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을 하셨단다.
당장에라도 팔겠다는 말을 들은 역에서 근무하는 막걸리를 먹던 사람들이 사갔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역으로 뛰어갔다.
늦으면 너구리가 죽는다는 생각은 뒤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숨가쁘게 뛰어갔지만 벌써 너구리를 시소처럼 저으며 가는 궤도차에 실려 역구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울면서 너구리를 싣고 가는 궤도차를 쫓아갔지만 일곱 살의 어린아이의 뜀박질과 자꾸 벗겨지는 고무신 때문에 산 모퉁이를 돌아가는 너구리를 끝내 구출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나는 날카로운 자갈에 찢긴 발의 고통보다 더 괴롭게 죽어갔을 너구리의 커다란 눈망울이 떠올라 울고 또 울었다.
피와 철도 침목의 콜타르에 범벅이 된 나의 발을 씻기는 엄마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흐느껴 울며 잠들기 여러 날 ㅡ
찢긴 발 때문에 학교도 못 가던 나는 잠결에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그 사람들이 너구리를 데려간 곳이 '바람부리'라고...
산과 산 사이가 좁아 기차 철교가 놓여있고 언제나 바람이 분다고 사람들은 그곳을 '바람부리'라고 불렀다.
이튿날, 부모님의 감시를 피하려고 동생을 데리고 '바람부리'를 향했다.
어른이 되어보는 그곳은 2~3 km 정도 되지만 며칠 앓고 난 나에게는 얼마나 멀던지.......!!
한 손에는 고무신을, 한 손에는 동생 손을 잡고 개울을 건널 때 소나기가 쏟아졌다.
찔레꽃 덤불과 가시 덤불을 헤치고 간 그곳에는 너구리는 없었다.
오직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잔혹한 살육의 현장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장작불에 검게 그을린 옹벽과 철교에 매달린 올가미, 사방에 버려진 너구리의 조각들이 보였다.
그것들을 보는 순간, 나는 아득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와 누가 흔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일어나 사방을 보니 어느새 소나기는 그쳤고, 무서워 우는 동생이 나를 흔들며 울고 있었다.
나는 비로서 눈물이 났다.
나는 울고 또 울고 피를 토하듯 울었다.
저고리를 벗어 너구리의 뼈 조각을 주어 모으며 흐르는 눈물은 끝이 없었다.
나를 태우고 다니던 너구리, 동네 어귀에서 기다려주던 너구리, 못된 형들로부터 지켜주던 너구리, 전쟁 놀이에서 선봉에 선 너구리가 이렇게 변하다니...!!
나를 비웃는 듯 가던 철도의 인간들이 비열하고 저주 받을 아귀와 같은 모습으로 연상되었다.
내 저고리가 작아 못다싼 너구리의 뼈를 동생의 손에 들리고 개울을 건널 때, 다시 소나기가 내렸다.
깜깜한 하늘, 천둥소리와 내가 우는 소리가 무서웠던지 동생이 또 따라 울었다.
"앙~! 앙!"
우리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는 계곡에 가득 차 메아리로 들려왔다.
동생 손에 들린 몇 개의 뼈 조각을 흐르는 물에 흘려가며 겨우 건너왔다.
동생과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산으로 올라갔다.
동생과 나는 너구리의 뼈 조각을 한 데 모았다.
뒷산 양지 바른 우리의 본부 옆에 너구리를 묻었다.
땅을 파고 부드러운 풀을 깔고 너구리를 묻었다.
나는 아끼고 아끼던 보물, 호루라기를 너구리의 품 속에 넣어줬다.
부디 하늘나라에 가서 좋은 친구를 만나 호루라기를 불며 행복하게 살라는 염원을 가득 담아서....!!
나는 해마다 봄 가을로 그 산을 찾는다.
수십 년 세월이 흘러 너구리와 놀던 그 산도 많이 변했다.
봄이면 길 옆에 무성하던 하얀 민들레도 보이지 않고, 무덤 옆에 으레 있던 할미꽃도 보이지 않는다.
몸에 좋다고 하면 모두 캐어 가 고향의 산천도 예전 모습이 아니다.
이제는 그 산에 오르려면 예전 같지 않아 힘이 든다.
고추를 드러냈던 한 사내아이는 귀밑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지금 그 산에는 시리도록 아픈 기억과 사랑이 무언지 가르쳐주신 부모님이 계신다.
그날, '바람부리'에 함께 간 동생도 그 산에 있다.
어느 해 늦가을, 메마른 낙엽이 구르는 어두운 밤 ㅡ
바람부리에 동행한 동생 녀석을 벽제 화장터에서 작은 상자에 담아 너구리가 있는 산으로 데려갔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 그 바람에 흩날린 녀석의 흔적도 이제는 찾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소중한 나의 사랑들이 있다.
길 옆 너구리의 무덤 옆에는 주변보다 더 큰 철쭉의 무리가 있다.
아마 너구리가 있어 그의 뼈 조각이 거름이 되었나 보다.
추석이 다가오면 나는 또 그 산에 갈 것이다.
그 산에 계시는 부모님, 형제, 너구리를 만나러 간다.
올봄, 그 산 길 옆에 앉아 아지랑이 속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오는 너구리를 만났다.
쉬지 않고 달려와 내게 안긴 너구리는 동네 어귀에서 기다려주던 행복한 모습이었다.
가을에도 또, 나에게 달려올 너구리를 만나리라!
나는 어쩌면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그리운 이름을 부르겠지.
비록 만나지 못해도 메아리로 되돌아올 그리운 이름들을 부르리라!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도 잊지 못할 그리운 사람들과 그리운 이름들을 부르리라.
올해 들어 귀밑에 흰머리가 부쩍 늘었지만, 나의 친구 너구리는 고추를 드러내고 함께 놀던 옛 친구를 잊지는 않았겠지...!
"너굴아!"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너굴아!"
"너무나 보고 싶구나!!"
.
.
.
빨리 가을이 와서 너를 만나고 싶구나.
우리 그날, 옛 전쟁터에서 너와 함께 마음껏 뛰어 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