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을 올리고 몇몇분은 칭찬의 글을 주셧고 몇몇분은 여기에 이런글을 쓰느냐고 하셧고 어떤분은 ai 글이라고 빈정대는 분도 계셧습니다. 주제가 잘못된것도 법에 제안된 내용도 없는데 그분들의 지적사항을 들어보고 싶어서 다시한번 글을 올림니다 ㅡㅡㅡ감흥이없으신분은 안보시면되고 잘못된글은 지적해 주시길 부탁드림니다.평가받기 위해서 올린것이아니라 오래전 돈을벌기위한 수단으로 경험했던 내용을 기록해 봅니다 ㅡ당시 학생신분으로는 할수있는일은 공부잘하는 학생들은 과외를 할수가 있엇지만 정부시첵이 수시로 과외허용 시기가 있엇고 과외 금지정책도 있엇다.전두환시절에는 과외가 허용됫고 노태우 시절에는 과외를 불법으로 규정 하엿다.그나마 나는 과외할 실력도 안되서 노가다판이나 집에농사일을 도와 조금씩 얻어쓰는게 수입의 일부엿다. 늘 호주머니는 텅텅 비엿엇고 돈쓸일은 많았던 것이다 .운동부 학생들은 일과를 마치고 학교주변을 배외하다보면 선배를만나 생맥주 한잔에 튀김 안주 먹는게 당시에 최고의 사치엿던것으로 기역한다.3.4학년되면 시간도 많이생기고 주변환경 적응시기가 되지만 돈이없으면 적적하기만 했을것이다.텐션이 높은 특기생들은 인기도 있지만 일반학생들과의 술자리가 부담스러울때가 있다. 선배들과의 자리는 인사하고 적당히 나올수도 있지만 후배들과의 자리는 일어날즈음에 몇천원 테이블에 꺼내놓고 나오는게 당시에는 예의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했다 .학기분 등록금이 60만원 이상이엿던 것으로 기역 되는데.영안실 일자리는 한달에 그정도 수입은 고수입 일자리엿던 것이다 .후배나 선배들에게도 당당하게 멕주.막걸리 정도는 튀김을쌓아놓고 먹어도 부담 스럽지 않은 풍요가 넘치는 사치스런 생활이엿다 .체육학과 학생들은 짧은시간에 왕창먹고 화이팅넘치게 마무리되고 .경찰 행정학과 친구들은 모범적인 매너와 깔끔하게 정리가 되고 .철학과 친구들은 그들만의 언어가 있고 그들만의 복장이 있다.그들은 언어가 사치스럽고 행동은 정신병자 같았다.1.2년 전만해도 같은 언어를썻고 같은행동으로 칭구엿는데 칸트를알고.소크라테스를 안다고 이런씨즘.저런프리즘.알아듣지못하는 말들을
지껄이면서 다음달즘에 노벨상이라도 탈것같은 개똥철학의 허세를 부린다. 그런 학교생활을 유지하면서 영안실 출근은 주3회를 했다 .주간출근도 있엇지만 야간 출근날도 많았다. 사람에 따라서 망자에게도 행복하게 사셧겠구나하는 이도 있고 고생많이하셧겠구나하는 망자도 있엇다. 할머니 한분은 연세80에 돌아가셧는데 고운 피부에 엷게 미소짖는듯한 표정으로 돌아가신 표정을하셧고 어느50대 남자분은 검은색 피부에 눈을 부릎뜨시고 어금이를 꼭문채 돌아가신분도 계신다 .그들의 표정에서 우리가 느낄수있는 감정은 기도와 탄식이 순간순간 절로 나온다. 가장 안타까운 망자는 어린 아이들이다.간난 아이부터 15세이하의 아이들을 대할때는 영안실에 시체는 있지만 장례식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병원에서 사망처리해서 화장터로 가는경우도 있지만 부검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시신을 천으로 말아 관에 바로 안장시켜 옮겨지는 경우의 부모들 마음이나 우리마음이나 보내주는 슬픔은 참으로 돌덩이가 가슴한구석에 매달리는듯한 시간이 길게 남아있다 .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