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으름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새벽마다 약수터를 오가면 7, 8천 보는 걷는다.
그리고 일상 활동을 하다 보면 10,000보는 거뜬히 넘긴다.
어느새 곧 500일이 다가온다.
그렇게 운동을 하니 허리도 꼿꼿하고 몸이 가볍다.
그러나 집에 들어오면 나는 자연인이 된다.
정리 정돈?
웃기는 이야기이다.
아내가 있을 때는 불가능한 일들이지만, 거실 소파에나, 주방 근처나 마구 어지럽힌다.
고의는 아니다.
땀에 절은 옷, 양말 들을 마구 던져버린다.
그리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고르려면 옷 방까지 난장판이 된다.
등산을 좋아하다 보니 옷방이 2/3가 등산복이나 용품이 차지한다.
아내의 옷은 별로 없다.
짠순이기 때문에 사지도 않지만, 아들, 며느리, 사위, 딸이 사 준 명품은 많다.
버버리 코트며, 밍크 코트, 구찌 가방이며 심지어 아라비아 벌꿀까지 가득하다.
비행기 안에서 산 면세품 화장품도 미쳐 다 못 바를 정도로 많다.
내게 갖다 준 양주 발*** 30년 산도 있었지만, 나는 두 달을 넘기지 않는다.
이 당근 마켓에 내 버버리 머풀러를 팔려고 내놔도 팔리지도 않는다.
국산 최고급 겨울 외투도 한 번도 입지 않은 것들이 가득하다.
"여보! 이제는 우리 인생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야! 아깝다는 생각 버리고 다 버려!"
부동산 20년 동안 운영하며 다달이 수입의 10%는 등산 용품을 샀던 나였다.
그런데 이젠 그것들이 아내에게나 나에게 짐이다.
요즘 산에 가면 가죽 등산화를 신은 사람을 보기 어렵다.
그 가죽 등산화가 여섯 켤레가 있다.
모두 메이커이다.
고어텍스라나?
얕은 물을 건너도 젖지 않는다.
상의도 그 섬유로 만든 옷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버릴 수 없다.
사연이 많은 옷들이다.
아! 저 옷은 도봉산에서 K가 사준 옷이지!
저 옷은 L이 이천 고속도로 아울렛에서 사 준 옷이지!
이런 저런 사연이 얽힌 옷들이기에 버리기 너무 아깝다.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집착이 있는 게 아닌가?
나이를 먹을수록 더 강해지는 듯한 것 같다는 생각을 스스로 한다.
내 아내는 자꾸 비우자고 한다.
욕심을 버리자고 한다.
"여보!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되지 말자!"
몇 달 전이다.
아내는 어디를 가서"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다고 한다.
또 자기가 죽으면 시신을" 해부학용"으로 써 달라는 것에도 서명했다고 한다.
물론, 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
서글펐다.
우리가 벌써 사후 세계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현실이!!
나는 솔직히 험한 인생을 살았기에, 알콜에 버무린 몸뚱아리는 쓸모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아내는 순결 그 자체이다.
가족 하나만 보고 평생을 산 아내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아내가 서명했다고 해서 의학 실습용으로 주고 싶지 않다.
23살 소녀(?)가 결혼해 나 하나만 보고 산 내 아내의 몸을 난도질하는 생각은 너무 끔찍하다.
누가 먼저 갈지 아무도 모른다.
나이가 많다고 먼저 가는 세상이 아니다.
아내는 나보다 7년 어리다.
그 아내가 나보다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내 희망이다.
신은 인간의 희망을 모두 허용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싫든 좋든 그분의 판단에 순응해야 만 한다.
밤이 깊어간다.
아들 집으로 떠난 아내를 생각하며 쓰는 글이지만, 왜 이리 슬픈지 모르겠다.
구멍 가게 가서 막걸리나 몇 병 사 와서 마셔야 잠이 올 듯하다.
편히 주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