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소리 없이 사람을 갉아먹나 봐요. 어릴 적 우리 집 외식은 늘 시장 끝자락 잔치국수였어요. 엄마는 항상 내 그릇에 면을 한가득 덜어주고는 본인 국수는 한참 뒤에나 드셨죠. 떡처럼 불어터진 면발을 꾸역꾸역 삼키는 엄마 모습이 창피해서, 어린 마음에 "엄마는 식성이 참 특이해"라며 면박을 주곤 했어요.
근데 어제 이삿짐 정리하다 엄마가 쓰던 낡은 가계부를 봤는데, 그날 날짜 옆에 **'소면 1인분 아껴서 딸내미 문제집 값 보태기'**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엄마는 불은 면을 좋아한 게 아니라, 당신 몫의 국물을 마시고 남은 면에 맹물을 부어 양을 불려 드셨던 거예요.
그 불어터진 국수가 당신의 한 끼이자 저를 향한 처절한 사랑이었다는 걸, 왜 서른이 넘은 지금에야 알았을까요. 지금 엄마 앞에 그 국수 다시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이제 엄마는 씹는 것조차 힘든 환자가 되셨네요. 저 진짜 나쁜 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