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동, 중국국적자분들은 누구나, 삶의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면서 같은 민족? 외국인 대접,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독산동에서 한을 품고 사시든, 기쁘게, 즐겁게 사시든, 모두 우리의 선택이고, 走自己的路,让别人去评论去吧。
서울시 금천구
고민/소통
벌써, 독산동에서 생활한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 당근 카페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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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독산동에서 생활한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가리봉시장 1층 연립주택 1층 단칸방에서 독산1동 2층 원룸으로 이사 온지도 어제같이 눈앞에 생생한데, 그때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를 경험했고 100년전이었다면, 여봐라, 잡아서 족쳐라 했을텐데, 조상땅에 와서 왕족대접을 이토록 받는다니 허구프다.
독산1동에서 9년, 독산3동에 이사 온지도 8년이 다되어간다. 문을 열고 몇발작만 걸으면 독산자연공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고 바깥 출입을 못하는 날들도 많이 있었다.
초등1학년 다니던 귀여운 딸애가, 이제는 성균관대학교 4학년, 몇개월 뒤에는 대학졸업.
가족이 함께 살기 위하여, 헬조선, 자본주의 자유경쟁, 한국 오는게 달갑지 않았지만 2011.03.03 대련에서 인천공항으로 날아왔고, 공항버스타고 가리봉시장. 중국 유치원, 소학교/초등학교, 중학교, 고중/고등학교, 대학4년, 졸업 후 직장을 여럿 바꾸긴 했었지만 모두 한국회사, 사무실 중간관리자, 위로는 한국인 주재원, 아래로는 중국직원들. 2002년 4월말에 연수로 한국 왔었고 9년후에는 생활을 위하여 2차 입국, 현재까지 죽~ 살고 있고.
서울특별시 봉사에도 지원했고 금천구 봉사도 했고, 지금은 자율방범대원으로 봉사 시작했고.
한국에서 조선족이냐, 동포냐, 한민족이냐 중국인이냐 아무런 영양가 1도 없는 논쟁을 지켜보았고, 선거철마다 붉은동네 인간들이 중국에서 한국 선거 개입하고, 한국 부동산 주인이 모두 중국인인양 떠벌리고 다니는걸 두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인간적으로 어디까지 야비하고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얼굴에 강철판을 깔고 떳떳하게 뱃지 달고 국민들 혈세 몇천만원씩 월급으로 받으면서도, 장외투쟁 등 헌정질서를 흐리고 반대를 위한 맹목적인 반대, 창씨개명 했었고 떵떵거리며 거들먹거리며 살았던 그 후손도 역사적인 반성 1도 없이 제 배를 불리고 국민들을 개,돼지 취급하며 so 한생을 잘먹고 잘 살고 또 물려주어서 그 개새끼들도 똑같이 기득권으로 떵떵거리는 모습들을 보면서, 역사는 그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옳고그름의 기준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는 한심한 상황들과 대통령까지도 감옥행, 대통령 탄핵도 가능함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시민들, 민주주의의 또다른 모습도 보면서, 남북전쟁발발 위험지역에 서로 총칼을 맞대고 눈알을 부라리는 모습, 정말 가슴 아프게 바라본다. 꽃다운 이팔청춘을 국방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낭비되는걸 보면서, 외세의 압제와 아직까지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미국의 손바닥인에, 작전통제권 하나도 어마무시한 비싼 값을 미국에 줘야만 하는 이 현실.
가족이 함께 모여 살면서, 조금더 잘먹고 잘 살려는 소망도 있지만 어디 그리 쉬운가? 댓가는 가정파괴와 도덕적인 타락과 결국 병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암담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만, 생각의 전환과 인생역전을 위하여, 네트워크 마케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