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현대에는 초대교회 공동체 모델을 그대로 재현하기 어려운가?
초기 교회를 공부해 본 사람들 대부분은 결국 불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가 처음 몇 세기 동안의 교회에서 보는 모습과 오늘날 우리가 실천하는 모습은 서로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간극이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는 단지 ‘실천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 즉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버렸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초기 교회 모델을 회복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지식이 아니라, 바로 ‘형성(formation)’이기 때문입니다. 수 세기에 걸친 형성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꿔 놓습니다. 왜 그런지 이야기해 봅시다. 첫 번째 장애물은 가장 보이지 않는 장애물입니다. 약 17~18세기 동안 서구 세계의 기독교는 거의 전적으로 제도권 교회에 의해 형성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비판이 아닙니다. 단지 역사적 사실일 뿐입니다.
세대마다 사람들은 기독교란? 곧 건물, 성직자, 공식 예배, 강단에서 수호되는 신조들, 그리고 영적 삶을 관리하는 위계 구조를 의미하는 세상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어떤 구조 안에서 너무 오래 살아가면, 그것을 더 이상 ‘구조’로 보지 않게 됩니다. 그것 자체를 현실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역사 자료 속 초기 교회를 접할 때, 가정에서 모이고, 함께 식사하고, 전문 성직자가 없고, 전용 건물이 없던 공동체를 읽게 될 때도, 그들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틀을 통해 그것을 해석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보면 “좀 더 작은 교회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초기 교회의 리더십을 보면 “조금 비공식적인 목사”를 떠 올립니다. 함께 나누는 식사를 보면 “성찬 예식”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본래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 체는 현대 교회의 더 작고 단순한 버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구조 자체가 다른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가까이 살아가며 일상의 자원과 식사, 결정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동네 기반 공동체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변 사람들이 전혀 다른 문명의 현실을 보고 경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문명은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른 가치들로 형성된 문명이었습니다. 그것은 일주일에 한 번 모임에 참석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역사가들이 초기 자료들을 보면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이 나타납니다. 식사 모임, 공공장소에서의 가르침, 즉흥적인 만남, 공동 의사결정 모임 등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주간 예배 안에 압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공동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공동체가 먼저였고, 모임은 그 공동체의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예배”와 “출석” 중심으로 생각하도록 형성 되어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 틀을 가져와 버립니다.
우리는 바울의 편지를 읽으며 주일 아침 예배 순서를 떠올립니다. 노래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 찬양 시간을 상상합니다. 가르침을 읽으면 설교를 떠올립니다. 초기 교회를 인식하기 위해 사용하는 바로 그 범주들이 오히려 초기 교회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깊이 형성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순히 "올바른 책 한 권 읽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몇 년, 때로는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초기 교회 모델을 재현하려 했던 많은 사람들도 결국 현대 교회를 조금 수정한 형태를 운영하게 됩니다.
두 번째 장애물은 더 깊은 문제이며, 신학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현대인들, 특히 서구 사회 사람들은 매우 개인주의적입니다. 이것은 도덕적 비난이 아닙니다. 고대 세계의 특정 역사적 조건에서 비롯된 사회학적 현실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공동체는 선택 가능한 라이프스 타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강하게 결속된 집단, 가족 네트워크, 길드, 지역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면 현대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취약해졌습니다. 의료, 법적 보호, 경제적 안정, 신체적 안전, 이 모든 것은 공동체에 달려 있었습니다.
신뢰는 가끔 실천하는 미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 전체를 떠받치는 기반이었습니다. 언약, 맹세, 충성의 규범들, 이것들은 형식이 아니라 생존의 구조였습니 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런 세계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본능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책임지는 법을 알았습니다. 자원을 나누는 법도 알았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무너지지 않는 신뢰를 어떻게 세우는지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기반 구조 대부분은 사라졌습니다. 국가가 안전망을 제공하고, 기관들이 공동체의 기능을 대신하며, 기술은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이웃들 사이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세대를 거치며 깊은 공동체적 삶에 대한 “근육 기억”은 쇠퇴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원합니다. 끊임없이 공동체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본능을 우리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능력을 반드시 길러야 했던 시대 속에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다루는 법을 모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책임지는 법도 모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흔했던 신뢰를 세우는 법도 모릅니다. 초기 교회 모델은 바로 이런 것들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없다면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연히 함께 모이는 개인들의 집합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형식이 진짜처럼 보여도, 그 아래 빠져 있는 것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세 번째 장애물은 아마 가장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문제일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근본적으로 히브리적이었고, 히브리적 사고는 현대 서구 그리스도인들이 물려받은 전통과 매우 다르게 작동 합니다. 서구 문명을 깊이 형성한 그리스 철학 전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전통에서는 가장 높은 실재가 추상적 개념, 보편적 진리입니다.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원리와 형상의 세계보다 부차적입니다. 이 전통은 조직신학, 교리 고백, 형이상학적 논쟁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반면 히브리 전통에서 진리는 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에무나(emunah)”를 보십시오. 현대 서구 기독교에서는 faith(믿음)를 흔히 내적인 확신이나 감정, 마음속 신념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에무나는 다른 결을 가집니다. 그것은 견고함, 신뢰성, 행동을 의미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믿음입니다. 삶의 방식 속에서 드러나는 믿음입니다. 또 “체다카(tsed-aqah)”를 보십시오. 보통 의로움 혹은 자선으로 번역됩니다. 서구 신학에서 의로움은 추상적 도덕 상태가 되기 쉽습니다. 선언되고, 전가되고, 논쟁되는 개념 말입니다. 하지만 히브리 세계에서 체다카는 매우 실제적이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깨진 것을 회복하고, 부족한 자를 돕고, 불의를 바로잡고, 세상을 실제로 바로 세우는 행위였습니다. 또 “샬롬(sha- lom)”도 있습니다. 보통 평화로 번역되지만, 히브리적 의미에서 샬롬은 단순한 마음의 평온이나 갈등 부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본래 의도된 방식대로 온전히 기능하는 상태, 부족함도 깨짐도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개인적 영적 감정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사회적 현실이었습니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형성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내려 했습니다. 자신들의 삶과 공동체를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논쟁할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거리와 동네 속에서 보여 주어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정의, 관대함, 가난한 자를 돌봄, 갈등 해결, 낯선 이를 환대하는 삶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서구 기독교가 에너지를 쓰는 방향과 비교해 보십시오. 많은 공동체들이 개념과 사상 때문에 분열됩니다. 성만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추상적 설명,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 자유의 관계, 종말론과 시간표, 2천년 전 헬라어 단어의 정확한 의미 같은 문제들 때문입니다.
이 논쟁들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실제로 볼만한 공동체를 세우는 실천적 작업을 밀어내 버릴 정도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곤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잔인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제도권 교회를 떠나 초기 교회를 회복하려 했던 많은 그룹들 조차 결국 같은 이유로 분열되었다는 것입니 다. 추상적 불일치 때문입니다. 누군가 다른 방식으로 읽고, 누군가 약간 다른 신학을 발전시키면, 함께 살아갈 능력 자체가 무너집니다. 왜냐하면 서구적 사고 속에서는 “사상의 일치”가 교제의 전제조건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교리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함께 존재하는 법을 모릅니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은 놀랄 만큼 신학적으로 다양했습니다. 공동체마다 식사를 다르게 이해했고, 리더십도 다르게 이해했으며, 예수와 그의 본성, 사명, 따름의 의미도 다르게 이해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실제 갈등을 일으키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상당한 역사적 증거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꽤 큰 신학적 다양성 속에서도 교제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들을 붙들어 준 것은 추상적 교리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평화, 실제적인 의로움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살아가겠다는 공동의 헌신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초기 교회 모델을 회복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우선순위로 삼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왜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주일에 무엇을 하느냐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시각 자체를 형성해 온 수 세기의 제도적 형성을 벗겨내는 작업입니다. 개인주의가 조용히 약화시켜 버린 관계적 본능을 다시 세워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과도 여전히 삶을 나눌 수 있을 만큼 사상을 느슨하게 붙드는 법을 배우는 작업입니다. 이런 것들은 빨리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단순한 열정만으로 생기지도 않습니다.
역사적 증거는 초기 기독교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 특정한 삶의 방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 줍니다. 가깝고, 공유적이며, 실용적이고, 동네 기반의 삶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토양은 오늘날 더 이상 같은 형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재현한다는 것은 단순히 형식을 복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이 가능하게 했던 조건 자체를 어떻게든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정말 가능할지, 그리고 누군가 실제로 시도한다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오늘날 기독교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 중 하나일 것 입니다. 만약 이런 종류의 역사적 탐구가 가치 있다고 느껴진다면 계속 읽어주세요. 이 글은 초기 기독교를 실제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생각도 듣고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세 가지 장애물, 제도적 형성, 공동체적 본능의 상실, 추상적 사고의 지배중에서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