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예정에서 되어진 필연적인 결과였을까요?
사도행전 7장 51절 이하를 보면, 스데반은 예수님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기고 분개하며 서러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을 통분히 여김으로써 그들의 행위를 패역무도한 것으로 저주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들의 언행을 통해 보게 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온당치 못한 죽음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두 번 째,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서 살펴보면,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섭리를 책정하시고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서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끊임없이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성막과 성전을 짓게 함으로써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셨고, 예수님 당대에는 세례 요한 같이 큰 신앙인을 이 땅에 보내서 메시아의 탄생과 현현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예정에서 되어진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번째, 예수님 자신의 언행을 통해서 볼 때,예수님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믿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 이하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봤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요한복음 5장 39절 이하,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증거하고 있는 성경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도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때때로 이적과 기사를 통해 그들을 믿게 하십니다.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하고 눈먼 장님을 눈 뜨게 하고 귀머거리를 들리게 하는 그러한 기적들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들은 마태복음 12:24처럼 바알세불이 접한 자, 곧 마귀 악마가 역사해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예수님을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설령,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만은 믿으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너희들이 깨달아 알리라,라고 요한복음 10:38에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를 믿을 수 있도록 언행 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19:41 이하에, 예수님은 또 유대인들의 배신행위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시면서 어디에 호소할 곳이 없어 가지고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우시면서, 하나님께서 2천년 동안이나 애쓰시고 사랑으로 이끌어온 이 이스라엘 선민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이 성마저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을 정도로 멸망해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라고 그들의 무지를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예정에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에 의해서 되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8 이 지혜는 이 세대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39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세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셔서 3차례에 걸쳐 피눈물나는 기도를 드린 기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가 무슨 기도일까요? 그것은 이 십자가의 죽음을 면케 해달라고 하는 그러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만일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하나님의 예정에서 되어진 그러한 노정이었다면 예수님께서 왜 이런 기도를 드렸을까요? 육신의 죽음이 무서워서 그런 기도를 드렸을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 한 분을 찾기 위해서 4천년 동안이나 섭리를 진행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메시아가 오셔서 지상천국을 건설하셔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길을 가시게 되면 이 땅 가운데 지상천국을 당대에는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고난의 역사가 계속 연장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잉태 될 때에도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라고 누가복음 1:31 이하에는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4:17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죽어서가 아닌 당대에 모든 뜻을 이루려고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선민들을 통해서 메시아를 보내주셨는데 그 메시아를 통해가지고 이 땅에 영원한 지상천국을 건설하려고 하셨지만 무지한 유대인들의 불신과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몰음으로써 그 이스라엘 선민들은 어떠했습니까? 선민의 자격을 잃어버리고 지리멸렬하고 말았습니다. 400년 동안이나 나라 없는 설움을 당했고 6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대학살을 당했던 것입니다.이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준 범죄에 대한 벌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지 않고 이 땅에 살아서 그 뜻을 이루었다면 영육(靈 肉)양면의 그 구원 섭리를 완성함으로써 이 땅에 소멸되지 않는 지상천국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육적으로는 창과 칼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자기를 십자가의 길로 내몬 이스라엘 민족들을 끊임없이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부활의 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영적으로는 구원의 기대를 완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신도들은 영적으로는 구원의 혜택을 받았지만, 여전히 육신적으로는 사탄이 침범함으로써 육적 구원의 완성은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심으로써 영육 아우른 구원 섭리를 완성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노정은, 하나님께서는 물론이며 예수님 당신께서도 원치 않으셨던 억울한 길였으며, 그 길을 어쩔 수 없이 걸으셨던 예수님의 아픔과 그 독생자를 바라보셔야만 하셨던 하나님의 슬픔을 우리들은 헤아려드리고 위로해드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