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나이, 누구는 40대 누구는 60대로 삽니다
AI가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노화를 늦추는 걸 넘어 되돌리는 시대가 머지않았습니다. 몇 년 안에 역노화를 현실로 만드는 약이 나올겁니다.
하지만 약 한 알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습니다. 그 약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운동·식단·수면·스트레스 관리라는 토대가 미리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기초가 무너진 몸에는 아무리 좋은 기술도 절반밖에 듣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날이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 운동·영양제·식단 다 해봤는데, 결국 스트레스가 제일 큰 적이라고 느끼는 분 환영합니다.
📌 성공/실패 경험 모두 공개
📌 역노화에 관심 있는 분이면 나이 상관없이 누구나
우리가 함께 하는 것들:
🧬 역노화 루틴 공유 (영양제·식단·수면·운동)
🧘 명상·스트레스 관리 실천 인증
🏃 런닝·등산·요가 오프라인 모임
🔬 분기별 혈액검사·인바디 측정 모임
💊 역노화 영양제 가성비 정보
경기도
건강/다이어트
역노화연구소장
인증 23회 · 1일 전
나는 왜 역노화 프로젝트를 하는가
많은 분들이 역노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물으면 보통 이렇게 답합니다. "더 오래 살고 싶어서요." 그런데 저는 조금 다릅니다. 저의 출발점은 "고통이 너무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노화란 천천히 진행되는 고통의 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당장 아프지 않더라도, 수십 년에 걸쳐 세포가 망가지고 염증이 쌓이고 혈관이 굳어가는 과정은 언젠가 반드시 현실이 됩니다. 고지혈증, 당뇨, 퇴행성 질환, 암. 이런 것들은 모두 노화라는 과정이 특정 임계점을 넘었을 때 터지는 폭탄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그 폭탄을 맞고 싶지 않아서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역노화 프로젝트는 더 오래 사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덜 고통스럽게 사는 프로젝트입니다.
고통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쁜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고통입니다.
나쁜 고통은 회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래의 고통을 불러오는 것들입니다. 늦은 수면, 수면 부족, 몸에 좋지 않은 식습관, 스트레스 방치, 자기 몸을 함부로 대하는 생활 방식. 이런 것들은 지금 당장은 편안해 보이지만 결국 미래의 나에게 더 큰 고통으로 돌아옵니다. 지금의 안락함이 미래의 고통을 사는 거래가 되는 셈입니다.
반대로 좋은 고통도 있습니다. 새벽 운동, 정해진 식단, 일정한 수면 시간, 하기 싫어도 몸을 움직이는 것. 이런 것들은 지금은 불편하고 때로는 귀찮고 피곤하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은 나를 무너뜨리는 고통이 아니라 미래의 고통을 미리 줄이기 위한 고통입니다. 운동 후의 근육통은 몸이 적응하고 강해지는 신호고, 식단 조절은 순간의 즐거움을 줄이는 대신 미래의 질병 가능성을 줄이는 행위이며, 일찍 자는 것은 당장의 자유를 줄이는 것 같지만 다음 날의 정신과 몸을 지키는 행위입니다.
저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선택을 반복하는 것은 단순히 게으른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식단과 운동을 의지력으로 버텨야 하는 고행으로만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미래의 나를 위한 선제적 투자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만드는 고통은?
하지만 역노화 프로토콜로 해결되지 않는 고통들도 있습니다. 바로 생각이 만들어내는 고통입니다. 조세프 응우옌의 책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는 이 지점에서 저에게 깊이 와닿았습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사건 그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내는 생각을 전부 믿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마음은 곧바로 이야기를 만듭니다. "나는 끝났다",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다", "나는 안전하지 않다", "나는 실패할 것이다", "이 불안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낸 문장일 수 있습니다. 생각도, 불안도, 공포도 떠오를 수 있지만 그것을 전부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 말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제가 느끼는 존재론적 공포, 미래에 대한 불안, 예측 불가한 위기 앞에서 마음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야기들. 그것들을 없애려고 애쓰는 대신, 그냥 바라보는 것.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건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나는 이 생각을 반드시 믿을 필요는 없다." 이것만으로도 고통은 조금 줄어듭니다.
카뮈의 대답: 세상은 원래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생각을 믿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생각이 아니라 세상 자체가 나에게 고통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입니다. 이때 저는 알베르 카뮈의 철학이 필요했습니다.
카뮈의 핵심 개념은 부조리입니다. 부조리란 인간과 세상 사이의 부조화에서 발생합니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끊임없이 세상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오는지, 왜 삶은 이렇게 불안정한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아도 불행이 찾아올 수 있고, 좋은 의도로 행동해도 고통이 생길 수 있으며, 계획대로 살아도 예측하지 못한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의미를 원하지만 세상은 침묵합니다. 이 충돌이 바로 카뮈가 말한 부조리입니다.
카뮈는 이 부조리 앞에서 인간이 보통 세 가지 방식으로 반응한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자살입니다. 고통을 끝내기 위해 존재 자체를 끝내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는 철학적 자살입니다. 종교나 이데올로기, 혹은 어떤 거대한 의미 체계에 기대어 "이 고통에는 반드시 큰 뜻이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반항입니다.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카뮈의 답은 세 번째입니다. 부조리를 피하지 않는 것, 억지로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 것,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지도 않는 것. 그냥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는 것. 이것이 카뮈가 말한 반항입니다.
의미 없음에서 발견하는 자유
카뮈 철학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이것입니다.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인간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무섭게 들립니다. 삶에 의미가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살아야 할 절대적 이유가 없다면, 죽어야 할 절대적 이유도 없습니다. 세상이 나에게 정답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정답 없이 살아도 됩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할 이유도, 누군가에게 증명해야 할 이유도, 어떤 위대한 의미를 만들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자유입니다. 저는 제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의미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지프는 왜 행복한가
카뮈는 시지프 신화를 통해 이 철학을 설명합니다. 시지프는 신들에게 형벌을 받아 영원히 바위를 산 위로 굴려 올려야 합니다. 바위는 정상에 닿는 순간 다시 굴러 내려오고, 시지프는 다시 내려가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합니다. 이 반복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이보다 더 무의미한 일이 있을까요?
하지만 카뮈는 말합니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왜 행복할까요? 바위가 굴러 내려오지 않아서도, 형벌이 끝나서도 아닙니다. 시지프가 자신의 운명을 명확히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삶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하는 일이 결국 다시 반복될 것임을 압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바위를 밉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순간을 의식하느냐입니다. 똑같이 바위를 미는 사람이라도, 아무 의식 없이 끌려가는 사람과 자신의 부조리를 알고도 자유롭게 선택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저는 이 부분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시지프와 비슷합니다. 몸은 계속 노화하고, 스트레스는 계속 찾아오고, 문제는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납니다. 완전히 끝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바위를 밉니다. 운동을 하고, 식단을 지키고,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고, 다시 하루를 삽니다. 그 반복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날에도, 그 반복을 의식하고 선택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반항입니다.
나의 역노화는 반항의 한 형태입니다
저에게는 전혀 다른 곳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부조리한 세상에 굴복하지 말고 반항하라는 말,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는 말, 스스로를 죽이는 행동을 멈추라는 말.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한 곳을 향합니다.
저의 역노화 프로젝트는 이 이야기들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세상이 예측 불가능하고 존재론적 공포가 밀려오더라도, 내 몸만큼은 내가 관리할 수 있습니다. 수면을 지키고, 염증을 줄이는 식단을 하고, 심혈관 기능을 유지하고, 근육을 만들고, 몸을 움직이는 것. 이것들은 노화라는 통제 불가능한 고통에 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입니다.
저는 세상의 부조리를 완전히 바꿀 수 없습니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모든 생각을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 몸을 돌보는 선택은 할 수 있고, 내 세포의 노화 속도에 조금이라도 개입할 수 있습니다. 그 좁은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저의 자유이고, 저의 반항입니다.
저는 오래 살고 싶어서 역노화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덜 받고 싶어서 합니다. 노화라는 예정된 고통을 미루기 위해 좋은 고통을 선택하고, 생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을 전부 믿지 않으려고 하며, 예측 불가한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체념하지 않고 반항하려고 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직시하되 거기에 압도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죽지 않는 첫 번째 세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생을 말하는 게 아니라, 수명 자체를 생각하는 것을 멈출 만큼 오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노화라는 과정 자체에 개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고,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진화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첫 세대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하지만 방향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릅니다. 그리고 설령 그 시대가 내 생애에 완전히 도착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덜 아프고 더 또렷하게 사는 것이니까요. 내가 오늘 수면을 지키고, 몸을 움직이고, 염증을 줄이는 식단을 하는 것은 그 방향 위에 내 발을 한 걸음 올려놓는 일입니다.
어쩌면 삶은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바위를 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저는 완전히 무력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도 저는 바위를 밉니다.
여러분이 역노화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더 오래 살고 싶어서인가요, 아니면 저처럼 덜 고통스럽고 싶어서인가요? 여러분만의 이유가 있다면 댓글로 함께 나눠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