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 타던 사람이 어느 날 밤 갑자기 “우리 집 와서 넷플릭스 볼래?”라고 하길래, 솔직히 심장이 엄청 뛰었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뭔가 분위기 있는 전개라고 생각했거든요. 괜히 혼자 의미 부여하면서 편의점 들러서 음료, 팝콘, 초콜릿까지 야무지게 사 들고 갔습니다. 문 열어주는데 너무 해맑게 웃길래 더 기대했죠. 그런데 집 들어가자마자 바로 이불 깔고 TV 켜더니, “이 드라마 진짜 미쳤어, 1화만 보자!” 하는 겁니다. 저는 옆에 앉아서 적당히 분위기 보며 말도 걸고 슬쩍 가까이 가보려 했는데, 그쪽은 제 존재보다 드라마 줄거리와 떡밥 회수에 더 진심이었습니다. 중간중간 제가 팝콘도 건네고 리액션도 맞춰줬는데, 손은 팝콘을 집고 눈은 화면에서 한 번도 안 떨어지더라고요. 반전 장면 나오면 제 팔 붙잡고 소리 지르고, 악역 나오면 대신 화내고, 저는 어느새 남자가 아니라 그냥 같이 보는 시청 보조 인력이 됐습니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세 편… 끝날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새벽 5시였습니다. 저는 반쯤 혼이 나가 있었고, 그 사람은 눈 반짝이며 “우리 시즌2도 같이 볼래?” 이러는데 진짜 웃겨서 할 말이 없었어요. 다음 날 친구가 “어땠냐?” 물어봐서 딱 한마디 했습니다. “연애 진도는 0인데, 시청 진도는 100이다.” 괜히 설렜던 제 자신이 제일 웃겼던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