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독자 집안의 장남으로 자라며 받는 것에만 익숙했다. 대학 시절 과외로 꽤 큰 돈을 벌면서도 동생들에게 용돈 한 푼 쥐여 준 적이 없었다. 마흔이 넘은 어느 해, 명절에 모인 동생들은 내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자기밖에 모르는 형과 오빠가 미웠노라고. 입사 3년 차 술자리에서 마주한 동료들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인사도 없고 표정도 딱딱해 언제 한번 혼내주려 벼르고 있었다는 말. 내성적인 성격 탓이라 변명해 왔지만, 실상은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독불장군이었을 뿐이었다. 타인의 불편한 시선을 3년이나 모른 채 지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利기주의자에서 이以기주의자로
변화는 결정적인 계기에서 시작된다. 이기심은 생존을 위한 본능일 수 있고, 나를 일으키는 자존감의 뿌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만 좋으면 그만인 극단적 이기주의는 결국 주변과 나 자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Lose-Lose 게임'으로 이끌 뿐이다. 그 진리를 깨달은 순간, 나는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다만 내 이익만 챙기는 '이利기주의'가 아니라,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의 '이以기주의자'가 되기로. 성과도 실패도 모두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생각은 주체성과 관계를 건강하게 보듬는 고차원적인 정신세계다.
'내 탓이로소이다'의 힘
관계의 평판은 자신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태도에서 결정된다. 공은 부하직원에게 돌리고 실책은 자신이 자처하는 리더는 결국 조직에서 존경받는다. 반대로 제 이득만 챙기고 실패는 떠넘기기 바쁜 이들은 당장은 승승장구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지는 게임에 빠지고 만다. 인생은 '누구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인드가 유효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옷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내가 커진 것이듯, 실패와 고난 앞에서 남을 질투하고 원망하는 것만큼 초라한 일은 없다.
관계는 일방적일 수 없다
스스로 허점 없는 완벽한 존재라 착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어떤 관계든 상대방 탓을 시작하는 순간 급속히 무너진다. 나를 주체적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끊임없이 묻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 모든 관계는 쌍방의 의지로 만들어진다는 진리. 그 진리를 붙잡고 나로부터 시작하는 책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는 진정한 어른이자 직장인으로 바로 설 수 있다. 그것이 지고도 이기는 길이자, 썩은 사과가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