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든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고 해요. 제가 참 좋아하던 공간이었는데, 이젠 마음 편히 갈 수 없을 것 같아 속상한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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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서서히 죽어가는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저 흔한 나무가 아닙니다. 무려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키며, 부암동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동네의 터줏대감 은행나무입니다.
제초제로 노랗게 변해가는 잎과 가지
사건은 지난 4월에 시작되었습니다. 파릇해야 할 은행나무 잎이 이상하게 말라 죽어가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주민들이 주변 CCTV를 돌려보았습니다. 그리고 화면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두운 밤, 누군가 나무 밑동에 드릴로 깊은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하고 있었던 겁니다. 잔인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걸 몇통이나 밑둥에 드릴을 뚫고 넣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마을 주민들은 곧장 범인을 찾아냈지만, 이내 더 큰 패닉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범인이 다름 아닌 그 동네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이자, 한국 미술계의 거장 고(故) 김환기 화백을 기리는 '환기미술관'의 직원이었기 때문입니다.
(환기미술관은 김환기 화백의 아내인 고 김향안 여사가 설립한 곳으로,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아늑하고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참고로 김환기 화백은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할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민 화가이기도 합니다.)
결국 경찰이 출동한 후에야 미술관 측은 범행을 시인했고, 이 황당한 사건 뒤에 숨은 속사정이 드러났습니다.
미술관 측의 변명은 이랬습니다. 나무가 너무 커져 고압 전신주를 건드릴 만큼 위험했고, 뿌리가 인도를 침범해 통행에 방해가 되었으며, 가을마다 낙엽과 냄새 민원이 빗발쳤다는 겁니다. 구청에 해결을 요청했지만, 나무가 서 있는 땅의 소유주가 무려 45명이나 얽혀 있어 법적 동의를 얻는 '절차상 난관' 부딪혔다고 합니다. 마냥 방치할 수 없어 결국 해서는 안 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주장이었죠.
하지만 주민들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미술관의 핑계 중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많다는 의견입니다. 무엇보다 백번 양보해 어떤 문제가 있었다 한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문화 기관이 밤중에 몰래 제초제를 주입해 생명을 독살하려 한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니까요.
현재 이 나무는 긴급하게 수로를 끌어와 물을 대주며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임시방편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 오래된 나무가 과연 이 모진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이 사건이 유독 마음을 아리게 하는 건, 김환기 화백의 호가 바로 '수화(樹話)'이기 때문입니다. '나무 수(樹)'에 '말할 화(話)', 평생 자연과 교감하며 이를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던 그의 자연 친화적인 예술 철학이 담긴 이름입니다. 부인인 김향안 여사 역시 자연을 깊이 사랑했던 분이었지요.
자연을 사랑했던 예술가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은 공간에서, 역설적이게도 100년이 넘은 자연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독살하려 했다는 사실이 참 씁쓸하고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