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남편과 결혼한 지 15년 차, 남들이 보기엔 그저 무탈하고 평온한 가정이었습니다. 남편은 다정하진 않아도 성실했고, 아이는 큰 말썽 없이 자라주었으니까요. 내 인생에 이런 비극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시작은 아주 사소한 의심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남편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화면을 아래로 향하게 가려두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퇴근 시간은 눈에 띄게 늦어졌고, 주말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나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과 '아닐 거야'라는 믿음 사이에서 수없이 갈등하다가,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샤워하러 간 사이 울린 메시지 한 통.
‘오늘도 고마워요. 조심히 들어가요, 내 사랑.’
그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손이 떨려 비밀번호를 겨우 누르고 들어간 대화창에는 내가 알던 남편이 아닌, 낯선 남자의 다정한 말들이 가득했습니다. 나와 아이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환한 미소의 사진들, 주말마다 출장이라며 떠났던 여행지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상대는 남편의 직장 동료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삶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가장 괴로운 것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상상들입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모습, 다정하게 웃는 얼굴, 나를 속이고 나누었을 수많은 거짓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헛구역질이 나고, 밤에는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아 꼬박 밤을 새우기 일쑤입니다. 거울 속 제 모습은 몇 주 사이에 완전히 생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남편은 뒤늦게 잘못했다며, 한 번만 용서해 주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다 끊어냈으니 앞으론 가정에만 충실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깨진 신뢰는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퇴근 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온몸의 세포가 곤두서고, 누군가와 전화를 통화하는 모습만 봐도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남편의 다정한 말조차도 '또 다른 거짓말은 아닐까' 의심부터 하게 되는 제 자신이 너무나 처량하고 괴롭습니다.
이혼을 하자니 아이의 얼굴이 밟히고, 경제적인 현실과 주변의 시선이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참고 살자니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은 채 평생을 지옥 속에서 살아야 할 것만 같습니다.
나를 배신한 남편에 대한 분노, 상간녀에 대한 증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겪으면서도 결단 내리지 못하는 제 자신에 대한 자괴감까지… 매일매일 피가 말라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저는 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는 밤이 오늘도 서글프게 깊어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