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나니, 남편과 나 사이에 '껍데기'만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마 전 막내딸까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 독립했습니다.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하고 정신없이 살 때는 몰랐는데, 큰 집안에 남편과 둘만 남게 되니 집이 마치 차가운 독방 같습니다.
남편과 저는 하루에 서너 마디 이상 나누지 않습니다. "밥 먹었어?", "어", "내일 비 온대", "그래". 이게 전부입니다. 각자 방에서 대화 없이 TV를 보거나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죠. 젊은 시절 서로에게 상처 주었던 기억들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어서, 이제는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조차 피곤해 침묵을 택한 결과입니다.
어제는 제가 몸이 심하게 으슬으슬하고 아파서 거실에 누워있는데,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더니 제 상태는 묻지도 않고 "오늘 저녁은 뭐야?"라고 묻더군요. 그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서글픔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죽어도 이 사람은 내 빈자리를 아쉬워할 뿐, 나라는 존재를 슬퍼해 주진 않겠구나 싶었어요.
앞으로 30년은 더 같이 살아야 할 텐데, 서로를 향한 온기가 완전히 꺼져버린 이 집에서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합니다. 이혼을 하자니 거창하고, 살자니 매일이 고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