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딸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였을 겁니다. 집안에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요.
이혼 후 혼자서 딸아이를 키우며, 어떻게든 기죽이지 않고 남들 하는 만큼은 해주고 싶어 시작한 밤길 대리운전이었습니다.
낮에는 작은 유통업체에서 탑차를 몰고, 밤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남의 차 운전대를 잡는 생활. 몸은 부서질 듯 아파도, 한 달에 몇십만 원이라도 더 벌어 딸아이 학원비라도 보탤 수 있다는 생각에 버텨온 세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 딸아이의 눈에 비친 아빠의 모습은 그저 '새벽에 남의 차나 몰아주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한 달 전,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목요일 밤이었습니다. 마침 콜이 잡힌 목적지가 딸아이의 학원 근처 아파트 단지였죠. 밤 11시가 넘어 학원 수업이 끝날 시간이라, 비도 오는데 잘됐다 싶어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빠 지금 네 학원 근처인데, 비도 오니까 아빠가 집까지 같이 데려다줄까? 버스 타지 말고 기다려."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신경질적인 목짜리가 들려왔습니다.
"됐어. 아빠 차 타고 가면 친구들이 다 보잖아. 그냥 버스 타고 갈 테니까 오지 마."
가슴에 툭, 하고 무거운 돌덩이가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낡은 아빠의 차를 보여주기 싫었던 걸까요, 아니면 밤늦게 대리운전 조끼를 입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부끄러웠던 걸까요. 그날 밤, 빗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추웠습니다.
진짜 상처가 되었던 사건은 지난주 주말에 터졌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다녀오더니 식탁에 문제집 청구서와 학원 교재비 내역을 툭 던져놓더군요. 이번 달에는 유독 들어갈 돈이 많아, 안 그래도 낮에 머리를 싸매고 가계부를 맞추던 중이었습니다.
"이번 달에는 아빠가 보너스가 안 나와서 그러는데, 다음 주까지만 조금 기다려줄 수 있어? 대리운전 열심히 해서 주말 지나고 바로 넣어줄게."
제 딴에는 부드럽게 달래며 한 말이었지만, 돌아온 딸아이의 반응은 날카롭기 그지없었습니다.
"대체 그놈의 대리운전은 왜 하는 거야? 매일 밤마다 나가면서 돈도 못 벌잖아! 내 친구 아빠는 대기업 다녀서 이런 걱정 안 한다는데... 아빠는 왜 맨날 돈 없다는 소리만 해? 나 진짜 친구들 앞에서 아빠 직업 말하기도 창피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린 딸아이의 등 뒤에서, 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거실에 홀로 앉아 담배를 태우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아이를 외롭게 하고, 이런 상처까지 주는 걸까' 하는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이혼할 때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행복하게 키우겠다"고 다짐했건만, 현실은 겨우 몇만 원짜리 교재비 때문에 딸아이에게 원망을 듣는 처지라니, 참 서글펐습니다.
하지만 방 안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이내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고등학생 아이 눈에는, 남들에게 번듯해 보이는 직업이 전부 고 전부인 것처럼 보일 테지요. 매일 밤 취객들의 주정을 받아내고, 서러운 소리를 들어가며 번 돈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일 겁니다.
철없는 구박에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다가도, 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면 그저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남들처럼 메이커 패딩 한 벌 제때 못 사주고, 수학여행 갈 때 용돈 두둑이 쥐여주지 못한 못난 아비의 죄책감 때문이겠지요.
오늘 밤도 저는 다시 대리운전 앱을 켭니다. 딸아이가 아무리 구박하고 창피해할지언정, 그 아이의 미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낡은 운전대와 아빠의 거친 손뿐이니까요.
언젠가 시간이 흘러 아이도 철이 들면, 아빠의 새벽길이 지독히도 외롭고 치열했던 사랑이었음을 알아줄 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