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적 기억이 가장 오래로 부터 떠오르는게 그닥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아버지를 중 2때 열 다섯의 나이로 하늘 나라로 올려 보내며 교회도 예수님도 믿지 않았던 어린 아이는 하느님을 찾으며 열 다섯의 그 날이 오기까지 매일 기도를 했다.제발 데려가 달라고...1년중 몇 날이나 몇 번이나 또는 통틀어 몇 시간을 가족과 함께였는 지는 계산도 안나오지만 그 얼마간의 시간과 과정이 나와 엄마와 기타등등의 가족에게는 지옥이었고 공포였다.그가 웃을땐 다 따라 웃는 척이라도 해야 했고 그가 돌변할 때는 같은 공간에 있음 자체가 불행이었다.
술과 담배는 근처에도 안가는 사람이 도박에는 무서운 집중력을 보였고 여성 편력 또한 문란,현란..그랬다.
아버지 당신의 등장 자체로 엄마의 웃음도 숨소리 마저도 주눅 들어야 했고.폭언과 폭력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었고 그가 떠나고 나면 깨지고 부서지고 뜯겨나간 가난한 살림은 어린 나에게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나는 엄마 껌딱지였다.그 이유중 하나가 아버지 저 인간으로 부터 시달림에서 벗어날 방법을 어린 나도 찾고 있는데 모진 매질을 견뎌야하는 엄마는 어른이 아닌가? 그런 이유였다.시장 바그니를 들고 나갈때 마다 치맛자락을 붙잡았고..어쩌다가 입술에 "루즈"(립스틱)이라도 바른 날에 난 바닥에 드러누울 정도로 난리를 폈다.그 몇 번의 일로 엄마의 화장끼 없는 얼굴은 40년을 훌쩍 넘긴듯 하다.
조금씩 더디게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하고.글을 깨우치고 산수 셈을 할 수 있을 무렵부터 쓰고 읽고 기도하고 죽기를 바랐다.걸음걸이,목소리..말투..밥 먹는것..물 한모금 마시는 것 조차 저주를 퍼부었고..시간을 더하기 하고 날 수와,달 수를 계산하고 예측해서 과연 언제쯤 저 인간을 안 볼 수 있을까?하느님은 언제쯤 내 기도를 들어 주실까...에 대한 응답이 88년 올림픽 개막식을 얼마간 앞두고 꿈이 이루어졌다.축제였고,행복의 날들을 계획대로 실천할 수 있게 됐다.불현듯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나의 축제.
그러나 그 순간.마지막 3일을 마지막 인연 정리가 되어야 했을 그 며칠.엄마의 처절한 통곡을 들어야 했고.그 이후로도 아버지의 생전보다 사후에 더 잦은 눈물 바람을 볼 수 있었고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의 눈물이었다.
아버지라고 불러본적도 없는것 같다.부를 일이 없었고.대답할 일도 없었기 때문인데.
그렇게 내 스스로 부정하고 증오와 원망만이 남아 있는 대상일 뿐인데.눈에 안보인다면 아무것도 바랄게 없던 기억뿐인데.
내 나이 50 이 넘어 서면서..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익숙한데 사진 속에 내 모습은 그와 너무도 닮았다는게 이 나이가 되어서야 소스라치게 놀란다.나는 여지껏 엄마를 빼닮은 외탁으로 알고 살았다.
더 거부하고자 하는 내 본질에는 걷는 것도..식성도.말투와, 목소리까지 만큼은 안닮은 걸 감사해야 할 정도로 사소한 버릇과 성격까지 징그럽게 닮았다는 사실이다.내 어릴적 인생의 모토(motto)는 무조건 그와의 반대로만 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 부질없다는 듯이 세월은 미친듯이 흘러 여기 와있고.내 나이 곧 몇년 뒤면 그의 생에 마지막 날에 가까워 오다보니..증오도 공포도 내가 감당하지 못한 잔해로 남았고.기억도 대부분 망각으로 합리화된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묘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그의 죽음이 그에게 근접해 왔을때 본인은 얼마나 두렵고 또 외롭게 맞이했을까.누구 하나 곡소리마저 사치로 느끼게 할만큼 애잔하거나 그렇다고 성대하지도 못한 초라하기 짝이 없는 마지막 상여 행차였다.
내가 느끼는 마지막 닮은 꼴이 바로 이런 모습일 것 같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면서 부터 생긴 갈등의 주제가 나의 초라함을 스스로 달래기 위한 그를 향한 시덥지 않은 용서의 오지랖이 아닌가 하는..오만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