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순수하게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는 분명 들었음에도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마치 꺼내면 안되는 말을 한 듯 꾹 닫은 그의 입술에서 아무런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두근거리고 떨리는 마음이 차가운 침묵에 가라앉았으며 스크롤만 내리는 그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이미 모니터 속 페이지가 끝났음에도 그는 계속 오른손에 쥔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는 마우스에 손을 떼고 의자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검은 눈동자에서 왠지 모르게 바다의 깊고 넓은 모습이 떠올랐고 빠지면 허우적대며 길을 잃을 것 같았다.바라보단 시선을 거두고 그는 잠시 머리를 쥐어보기도 했고 한숨을 쉬며 말을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했다. 그 끝에 턱을 괴고 다시 모니터를 향해 바라보았다. 글은 그렇게 쉽게 정의되는 건 아니야. 수많은 책을 최소 10년 읽어야 머릿속 글감이 차올라. 그리고 넘쳐흘러 쏟아질 때, 그때 글 써야 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얼마나 글에 굶주렸는지 느낄 수 있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인지, 아니면 경험담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는 넘쳐 흐르지 않는 그릇에 허망감과 우울감을 느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대답에 간단한 감사표시를 하고 등 돌리며 문 밖으로 걸어갔다. 그때 오른쪽 모서리 책장에 쌓여있는 수많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모를 씁쓸함이 몰려와 고개를 푹 숙이고 방문을 닫았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보고 있었던 티비에서 한창 드라마가 열정적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에 별 반응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지나쳐 내 방으로 들어왔다. 익숙한 공간을 서있는 채 한참동안 둘러보니 정리되지 않은 침대, 아무렇게나 놓여진 과자 봉지와 그보다 한참 적은 책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책상에 다가가 의자에 앉은 채 노트북 전원을 켰다.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파일 속에서 유일하게 모니터 한 구석에 밀어넣은 파일을 누르니 그동안 써왔던 글들이 보였다. 멍하니 제목들만 훑고 습관적으로 메모장을 띄었다. 흰 종이와 그 안에서 새로운 글을 쓰길 기다리는 텍스트 커서를 보며 입술을 꾹 누른 채 침을 삼켰다. 키보드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보며 이마에 손을 올린 채 뒤로 젖히며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글쓰는 게 이렇게 어려웠나... 고개를 살짝 돌리니 책장에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무언가를 결심한 듯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책장에 다가가 아무거나 책을 꺼낸 채 침대에 누워 첫장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