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저씨의 대화는
꺼져가던 의심에 다시 불을 붙였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때—
의자가 밀리는 소리.
최씨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멍하니
방금 들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 사람이 온 뒤로
귀신이 보이지 않는다.
주인아저씨가 말한
‘그 사람’.
…나를 뜻하는 것 같았다.
이 집에 들어온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면—
왜 하필 나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
주인딸 이야기.
주인아저씨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기 딸을
이 지옥에서 꺼내줄 수 있는 건
그 사람뿐이라고.
…그 사람이 나라면.
나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 거지.
구해주는 사람?
아니면—
그 반대인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혹시…
재물 같은 건 아닐까.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침이 밝았다.
난 마음이 답답해
동네 한바퀴를 돌러
밖으로 나갔다.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뒤..
“아저씨… 일어나셨어요?”
지순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문고리가 천천히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지순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방 안은 비어 있었다.
지순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아마도
최씨 아저씨와 함께
사과 포장을 하러 나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뭔가 할 말이 있었는지
입술을 살짝 삐죽 내밀며 돌아서는 순간—
그녀의 바로 뒤에
내가 서 있었다.
“아—!”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깜짝이야…”
지순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한 발짝 물러섰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지순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한 채
숨을 고르다가
겨우 진정을 찾았다.
잠시 후,
마당 평상에 걸터앉았다.
나도 조심스럽게
그녀 옆에 앉았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그런데… 제 방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지순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던 시선이
천천히 나를 향했다.
“아저씨도… 궁금하죠.”
잠깐의 침묵.
“…빨간 방.”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가슴이 묘하게 조여왔다.
내가 계속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그 이야기였다.
“아… 네. 솔직히 궁금했어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왜… 방 조명이 빨간 건가요?”
지순은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어릴 때부터 몸이 안 좋았어요.”
담담한 목소리였다.
“병원도 많이 다녔어요.
부모님이랑… 여러 군데.”
잠시 숨을 고른다.
“근데… 원인을 못 찾았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순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방을 쓰게 된 거예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빨간 조명이
건강 때문인가요?”
지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입을 열었다.
“혹시… 귀—”
그 순간이었다.
쾅—!!
누군가
문을 거칠게 차고 들어왔다.
순간, 공기가 뒤틀린 것처럼
모든 것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