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화면이 꺼지고 쯧, 하는 짧은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리모컨이 소파 위에 던져졌다.
“그 때 죽었어야 하는데. 질긴 명줄 이어가다 보니 이딴 더러운 꼴까지 보는구만.”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실로 들어갔다. 옷장 문을 열자 오래된 나프탈렌 냄새가 흘러나왔다. 안쪽 깊숙이 걸린 제복 두 벌.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하나는 오른쪽 가슴팍에 훈장 하나가 외롭게 달린 채,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제복을 꺼내 들었다. 무거웠다. 여러 훈장이 가득 달린 제복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진 건, 아마 오늘이 처음이었다. 겨우 단추를 채우고 나서 그는 침대 곁으로 걸어갔다. 2년 전부터 깊은 꿈에 빠진 부인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다행이었다. 이 더러운 현실로 끝내 돌아오지 않아도 되니.
“금방 다녀올게.”
작게 속삭이고 그는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한 켠, 오래전부터 덧댄 흙더미 아래에는 방공호가 있었다. 그가 몇 해 전부터 조금씩,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손수 다져온 것이었다. 손잡이를 당겨 내부를 점검했다. 물, 건전지, 담요, 비상약. 두 사람이 꽤 오래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이 늙은이가 죽기 전에 쓰이게 되다니.’
그는 피식 웃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주름진 손으로 옆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젊은 부부의 얼굴에는 겁이 역력했고, 그 뒤로 쌍둥이 자매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서 있었다. 그는 걸음을 옮기다 멈췄다. 두 아이의 맞잡은 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먼타국에서 끝내 손 잡아 주는 이 하나 없이 쓸쓸히 홀로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을 아이가 떠올랐다.
“이리 오게.”
그는 앞장 서서 부부와 아이들을 방공호 안으로 안내하고 나서 입구 쪽에 섰다.
“내가 잊은 게 있어서 잠깐 집 안에 다녀오겠네.”
무거운 철문에 손을 얹었다.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완전히 닫히기 직전, 그는 심호흡을 했다. 오랫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 어색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만큼은 어색하지 않았다.
“그동안 고마웠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아마 그들과 보는 건 이게 마지막일 테다. 5년 전 겨울, 그가 마당에 쓰러졌을 때 달려온 건 그 젊은 부부였다. 차가운 땅바닥에서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 것도. 그가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도 결국 그들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제 그가 돌려줄 차례였다. 늙은 입 하나가 없어진 만큼, 그들은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을 테다. 어쩌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딜만큼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부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액자 속 아들은 여전히 스물한 살이었다. 그 아이도 아버지처럼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다만 훈장 대신, 영정 앞에 접혀 놓인 국기가 그 제복을 완성시켜 줬을 뿐이었다. 그는 액자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천천히 눈을 감고 아내를 끌어안았다. 멀리서 무언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사이렌인지, 아니면 오래전 기억 속 어떤 소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잘 자렴. 불은 아빠가 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