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아랫 배가 더부룩하다.
좀 걸으면 나아지려나.
두터운 옷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바다-늘 오지만 언제나 좋다.
파워 워킹으로 10000보가 목표여서
동백섬을 돌기로 방향을 잡았다.
웨스틴 조선 호텔 입구에 들어서니
해윤님 생각이 나서 그쪽을 보며 걸었다.
동백섬을 돌면서도 귀에서는 계속 음악이
흐른다.
걸으면서 듣는 음악의 맛은 각별하다.
집에서 편안하게 듣는 음악도 좋지만
적어도 내겐 걸으면서 듣는 음악이 더
귀에 감긴다.
Boz scaggs,riders in the sky,keith jarrett
이 차례로 흘렀고,그 사이사이 기억나지 않는
곡들이 플레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피아니스트 마우리찌오 폴리니가 연주하는 쇼팽 ballade 2번이 흘러 나
왔다.
키스 자렛과는 또 다른 톤의 차갑고 기계적인 정확함. 에밀 길레스에 비견되는 강철같은 타건.
1960년 쇼팽 콩쿨에서 18세의 폴리니가
만장일치로 우승했다.
심사위원장이던 아르투로 루빈스타인은
심사평에서 어린 폴리니를 향해 "심사위원
석에 앉아 있는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상찬했다.
우승 이후 수 많은 신문과 레이블에서 그와 계약 하려고 했지만 그는 몸을 숨겼다.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 폴리니는 당대의
피아노 사제 아르투로 미켈란젤리를 사사
한다.
시간이 흐르고, 비로소 콘서트 무대에 선 그는 부르주아적 위선에 저항하며,베토벤과 쇼팽은 부자들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현장 노동자들이 일하는 쇳소리와 용접 연기 자욱한 공장과 시골 학교에서 연주했다.
라스칼라와 카네기 홀이 아닌 민중들의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이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현장에서 베토벤과 쇼팽을 연주
한 것이다.
그의 연주는 감정이 없고 너무 차갑다고
사람들은 평하기도 했지만 그 차가운 정확함
을 끈질기게 듣노라면 가슴 밑바닥에서 목구멍 위로 밀려오는 뜨거운 불덩이를 경험할
수 도 있다. 아니 그걸 느껴야만 제대로 폴리니를 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다 표면 위 윤슬의 반짝임이 폴리니의 타건과 뒤섞여 춤추는 7km 걷기를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https://youtu.be/XoIkY0cYGj0?si=AT4KO00GtkyWJk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