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과거의 라디오 방송들 녹음 테잎을 종종 볼수 있습니다.
이 오디오 파일도 청취자가 테잎에 당시 녹음한 것입니다. 날짜는 1988년 12월31일.
저도 당시 이 방송의 애청자 중 한 사람이어서 이런 파일들은 반가울 수 밖에 없습니다.
<FM25시>라는 이 방송은 디스크 자키 전영혁씨가 진행하던 FM 심양방송 이었습니다. 주로 밤 12시에서
2시 사이에 방송 되었는데 국내 매니아들 사이에선 꽤 독보적인 방송이었습니다.
전영혁씨는 80년 초에 이미 전문 팝 매거진인 <월간팝송>의 편집장이자 팝칼럼니스트로 명성이 있었습니다. 팝 락 계열의 앨범을 사면
전영혁씨 글을 흔하게 볼 수 있었죠.
그리고 80년대 중반 이후 방송계에 들어오면서
차별화된 음악들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발매되지 않은 해외의 아티스트나 앨범들을 소개하면서 매니아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거 같습니다.
메탈리카, 뉴 트롤즈, 팻 메쓰니,등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방송으로 기억합니다.
학창시절 메탈리카의 라이브 실황으로 Master of Puppets를
당시 열악한 모노 라디오로 들었을때의 신선함과 충격,
그리고 부산 출신의 메탈 밴드 Stranger를 소개할때 파격이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이 방송은 일단 잡 멘트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었고 그저 곡 소개만을, 그것도 가끔 중간에 이루어졌지만, 그럼에도 방송에 보내는 엽서들은 압도적이었습니다. 저도 두 어번
엽서를 손 글씨로 보냈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습니다.ㅎ
심지어 수많은 엽서들의 정성과 그림들이 아까워 한번씩 엽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음악 매니아 뿐 아니라 심야 시간의 주 청취자였던고등학생 대학생들의 성원이었으며 어쩌면 심야시간
이 방송은 일종의 해방구이자 음악이데아 역할를 한 것 같습니다. 마치 영화 <볼륨을 높여라>에서
크리스챤 슬레이터가 진행하던 심야의 해적 방송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절대적 지지를 받았음에도 방송의 특성상 거의 광고주없이 진행되었으며 늘 존폐의 압박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이던 방송이 한 시간으로 축소 되었으며 새벽 2시까지 시간대가 밀려났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막을 내린 것이 2008년경 입니다. 20여년의 음악 왕국이 작별을 고한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는 자주 듣지는 못했지만 그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 한켠이 든든했는데
종방은 어쩌면 국내 음악 방송의 한 시대가 저무는 사건이 된거 같습니다. 종방 이후에도 애청자 모임에서는 복권 운동이 방송국을 대상으로 수년 간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이 방송과 관련해 또 하나 독특했던 점은, 방송 엔딩에 시 낭송으로 마무리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문과 출신이기도 했던 전영혁씨의 성향도 작용한 듯 싶구요.
배경음악으로 Jethro Tull의 Elergy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시를 낭송했는데 꽤 어울렸던 기억입니다.
이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도 시 낭송이 들어 있는데,
푸시킨의 시 <구름> 이 흘러 나옵니다. 푸시킨의 드문 시입니다.
구름
/ 푸시킨
폭풍우 스치고 간 자리에
마지막 구름 한 점 남아
홀로 맑고 푸른 하늘을 떠돌아
침침한 그림자를 지우며
환희 속에 혼자만 서러웠다
얼마전 넌 하늘을 가리고
번개와 더불어 무섭게 소리치며
메마른 땅을 빗줄기로 축여 주었지
이제는 숨어버리렴 때는 지났으니
대지는 활력을 찾고
폭풍은 이제 지나갔다
이젠 바람이 나뭇잎을 간지럽히며
평온한 하늘에서 너를 몰아내고 있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음식이 썩듯이 우리의 일상도 썩기 마련이며, 그 일상의 방부제에는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이 시, 술, 음악 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우리 일상에 드리운 권태와 침몰을 몰아낸다는 뜻인데, 한때
매우 동의하던 말입니다. 다만 요즘에 와선 하나의 도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술의 경우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ㅎㅎ
아무튼 유튜브 보다 영상이 떠서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