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 wonderful world를 걸죽하게
부른 가수라고 알고 있는 루이 암스트롱이
맨 처음 잡은 악기는 탬버린이었습니다.
루이는 13살 무렵 어느 새벽에 공중을 향하여 공포탄을 쏜 이유로 소년원에 들어갔고
거기서 밴드 마스터 피터 데이비스를 만났
습니다.
루이의 거친 환경 때문에 밴드 부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피터는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누그러져서 그의 손에 탬버린을 쥐어 준 것 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는 트럼펫과 닮은 악기인 코넷 주자가 되었고 결국 소년원 밴드의 리더로 그 곳을 나왔습니다.
출소 후 심부름 같은 잡일을 하며 번 돈으로
뉴 올리언스 최고의 코넷 연주자 킹 올리버에게 배우죠.
이 선택이 루이 암스트롱을 전혀 다른 인물로 만든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루이는 7살 때 부터 폐품을 주웠고,홍등가에
석탄을 날라 주며 생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16살이 채 되지 않은 미혼모였고,아버지는 떠돌이 노동자 였습니다.
인종 차별이 극심하던 그때 그의 삶은
흑인 검둥이들이 살아가야만 하는 정해진
길로 가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코넷을 만나기 전 까지는 말입니다.
킹 올리버에게 배운 뒤 루이는 유람선에서
연주 했고,몇 년 후 올리버의 초청으로 시카고를 거쳐 플레처 핸더슨 악단에서도 연주 합니다.
루이 암스트롱이 뉴욕에서 활동하던 플레처 핸더슨 악단을 돌연 그만 둔 것은 루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핸더슨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핸더슨 뿐 아니라 다른 연주자들도 그의 걸죽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걸 혐오 했습니다.
하지만 루이는 자신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있었고, 가사 없이 뜻없이 흥얼거리는 스캣을 재즈에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플래처 핸더슨 악단을 나온 뒤 루이는
시카고 에서 일했는데 이 때 오케이 레코드가 루이 암스트롱 에게 최초의 리더작을 제안 했고 그는 앨범 녹음을 위해 hot five/hot seven을 조직 합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훗날 그의 두번째 아내가
되는 멤피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릴 하딘을
제외 하고는 모두 뉴 올리언스 출신의 뮤지션 으로 채웠고 이들이 연주한 레퍼토리는 당대 재즈의 레퍼런스가 되었습니다.
이 앨범을 들으면 왜 루이 암스트롱이 단순히 What a wonderful world를 부른 할아버지가 아니고 위대한 재즈의 프론티어 였는지
알게 됩니다.
Hotter than that, chimes blues,Willie the Weeper,wildman blues등이 이 시절의 녹음입니다.
루이 암스트롱의 혁신은 뉴 올리언스의
다성음악(polyphony)혹은 앙상블을 솔로
독주자를 위한 호모포니(homophony)로
바꿨고,이 새로운 음악을 유럽 클래식 음악과
같은 레벨에서 예술적 의의를 겨룰 수 있는
독자적인 미국음악으로 정초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재즈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흔히 팝에 가까운 퓨전 재즈를 듣거나 밥이나 쿨 재즈를 많이 듣지만 재즈의 황금기인 스윙 시대의 음악들은 대체로 경시 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뉴 올리언스에서 시카고 시대를 거쳐 뉴욕에서 꽃피운 스윙 시대의 음악을 외면 한다면 재즈의 얼굴을 다 봤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입니다.
물론 그 시대는 100년 전이었고,녹음 상태도
열악했기에 음악을 듣는데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4K나 HD수준의 고퀄리티의
그저그런 음악과 1920년대의 이들의 음악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코 후자를
선택할 겁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음질적인 측면을 고려 하여
루이가 1954년에 녹음한 명반<louis amstrong plays W.C handy>에서 블루스의 고전 st. Louis blues를 들어 봅니다.
이 앨범 녹음시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스튜디오를 방문한 W.C handy가 감동의
눈물을 흘린 일화는 너무도 유명한 것이죠.
https://youtu.be/VeS29FJmLTw?si=Qrc5KKZ0tDA2K3J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