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다
"쓰신 글 전부 본인이 쓴겁니까?"
나는 겸연쩍게 답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순전히 자기 머리에서 창작된 글이라는
것이 있을까? 설사 있다고 해도 대단치 않
을 것이다.
삶의 선행자들이 걸어간 길의 중요한 국면을
종이에 새겨 놓은 것이 역사일텐데, 굳이 이를 외면하고 오직 자기 머리로만 생각해서
적은 글은 왜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음악을 들을 때 그 뮤지션의 바이오그라피와
디스코그라피를 찾아 보는 것은 기본이겠다.
외국곡일 경우 번역기를 돌리면 금새 한국어
로 알려준다.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그 노래가 불려진 시대
예를 들어 1970년대 라면 그 시대를
서머리 형식으로 라도 훑어본다.
그리고 노래의 주제가 되는 부분과 관련된
자료들을 필요한 만큼 모아 읽거나 공부한다
이제 모든 준비는 다됐다.
재료가 준비 되었으니 물 조절과 불세기
조절만 잘하고 잘 비비면 된다.
물조절 불조절이 잘된 날은 글이 먹을 만
하겠지만,실패하는 날은 숟가락을 빨리
놔도 별 수 없다.
내가 자주 이용했던 글 재료 소매상 중에
故 이윤기 가 있다.
나에게 신화의 세계를 알려준 그
나에게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조르바를
알려준 그다.
죽기 전 이윤기는 크레타 섬에 묻혀 있는
카잔차키스의 무덤에 넙죽 절하고 왔는데
그 때 꼬불쳐 둔 소주 한병과 솔 담배 한개피
를 무덤 앞에 진상했다는 글을 본 적 있다.
오늘 우연찮게 이윤기의 산문 책을 꺼내
읽었다.
<한비자>얘기나 <육조 혜능>,신화 얘기가
써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슬렁
슬렁 넘긴다.
앞으로 돌아가 서문을 읽다
가슴이 콱 막히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가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해서 나도
따라한 것은 아니다.
그의 글
"홍수 복구 현장에서 일하는 굴삭기를 구경
하다가 눈시울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굴삭기는 길을 따라 나아가다가 길이 끊어지
면 제 길을 닦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내 삶을 돌아 보면서, 참 힘들었지,하는 생각을 굴삭기를 바라보면서 했다.
중략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생각한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사정이 이런데 어찌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3개월
다닌 뒤 중퇴했다.
이후 쌓아올린 문학적,언어학적,신화학적
성취는 모두 독학으로 이룬 것이다.
오늘 펼친 책은 그의 첫 산문집
<무지개와 프리즘>이다.
지금 이윤기 선생은 무지개 너머에서
평안하게 살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글은 무지개 아래 프리즘을
통하여 수 많은 메타포로 새로운 독자와
만나겠지.
새벽 한강에 가면 굴삭기 같은 인생들을
만날 수 있을까?
말로-새벽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