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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주식회사(Korea Inc), 재평가의 시간>
버블 논쟁이 놓치고 있는 산업 구조의 변화
지난해부터 한국 주식시장은 이례적인 속도로 상승했다.
KOSPI 는 주요 글로벌 증시 가운데 손꼽히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문제는 상승 그 자체가 아니다. 그 동력을 시장 스스로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중력에 눌려 있던 시장이 그 장벽을 뚫고 낯선 고도에 진입하자 자연스럽게 의문이 따라붙었다. 이것이 새로운 국면의 시작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거품인가.
이러한 의심은 무리가 아니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사이클의 굴레에 갇혀 있었다. 반도체가 좋을 때 급등하고, 사이클이 꺾이면 여지없이 추락하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이번 상승 역시 AI 붐이 만든 일시적 메모리 랠리라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사이클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대한민국 주식회사(Korea Inc)가 쥔 산업의 병목
지금 세계 경제는 거대한 인프라 투자 사이클 위에 올라 있다. AI 데이터센터, 전력망 확장, 군비 지출 증가, 그리고 에너지 운송 인프라가 그 핵심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네 분야의 핵심 공급망에 한국 기업들이 모두 포진해 있다는 사실이다.
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HBM 시장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에너지 인프라의 핵심인 LNG선 시장은 한국 조선소들이 장악했으며,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수주잔고는 이미 수년치를 채웠다. 전력 인프라 투자에서도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은 대체 불가능한 공급자다. 방산 분야 역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이 산업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이미 수년치의 주문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 즉 지금 한국 산업은 단순한 경기 민감 사이클이 아니라 확정된 매출을 기반으로 한 ‘수주 사이클’ 위에 있다.
제조업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세계 제조업은 양극단으로 이동했다. 대량 생산은 중국으로, 첨단 기술 제조는 소수 국가로 집중됐다. 독일은 산업 전환의 압박 속에 고전하고 있고, 일본은 이미 한 차례 리레이팅을 경험했다. 그 사이에서 한국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AI 메모리, LNG선, 초고압 전력 장비, 방산. 이 네 산업은 모두 기술 장벽이 높고 공급자가 매우 제한된 분야다. 다르게 말하면 한국은 지금 세계 산업의 핵심 병목(Bottleneck) 몇 개를 동시에 거머쥔 독보적인 나라가 됐다.
낯설지만 반가운 변화
더 결정적인 변화는 자본시장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 증시를 오랫동안 억눌러온 것은 산업 경쟁력이 아니라 거버넌스의 낙후성이었다. 낮은 배당, 소극적인 주주환원,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이었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이례적인 풍경들이 포착된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주주 행동주의의 목소리가 커지고 지배구조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 변화는 이제 시작이지만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버블인가, 리레이팅인가
이번 상승에 반도체 업황의 영향이 컸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산업 구조의 재편과 자본시장의 질적 변화를 종합해 볼 때, 이를 단순한 반도체 사이클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결국 질문은 “지금이 고점인가”가 아니다.
”우리가 가진 병목의 가치를 제대로 계산해본 적이 있는가”다.
대한민국 주식회사(Korea Inc)는 지금 비싸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덧씌워졌던 저평가의 굴레를 하나씩 벗겨내고 있는 중이다.
비싸진 것이 아니라, 제값을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