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기억나요?
단칸방에서 시작해도 우리 둘만 있으면 세상 무서울 게 없다며 서로의 손을 꼭 맞잡았던 그 젊은 날들을요. 친정 부모님의 거센 반대 앞에 당신은 고개를 숙였지만, 나는 당신의 그 투박하고 성실한 손마디를 보며 확신했어요. 이 사람이라면 내 평생을 걸어도 좋겠다고.
그렇게 우리는 참 지독하게도 살았네요. 남들 쉴 때 당신은 땀 흘리고, 남들 좋은 옷 입을 때 당신은 낡은 신발 밑창을 갈아가며 버텼죠. "조금만 참자, 우리 번듯한 집 한 채 생기면 그때는 여행도 가고 아이들이랑 원 없이 웃자"던 당신의 약속. 십수 년 만에 드디어 우리 이름으로 된 집 열쇠를 손에 쥐던 날, 당신은 나를 안고 아이처럼 울었잖아요.
그런데 여보, 인생이 참 야속하기도 하죠. 이제야 비바람 피할 지붕 만들고 따뜻한 밥 한 끼 편히 먹으려는데, 왜 당신에게 이런 가혹한 시련이 찾아온 건지 하늘이 원망스러워 자꾸만 눈물이 차오릅니다. 그동안 가족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본인 몸 하나 돌보지 못한 게 결국 이렇게 병이 된 것 같아 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져요.
췌장암 4기... 세상은 절망적인 숫자라고 말하지만, 여보,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쉬운 길을 걸어온 적이 없잖아요. 남들이 안 된다고 할 때마다 당신과 나는 보란 듯이 이겨내며 여기까지 왔어요. 우리 인생 자체가 기적이었는데, 이깟 병 하나에 무너질 수 없잖아요.
"여보, 내 곁에 조금만 더 머물러줘요. 아직 당신이랑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당신이 차마 말하지 못한 통증과 두려움을 내가 다 대신 가져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신 곁바라지하며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는 일뿐이라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요. 당신은 이 세상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산이잖아요.
여보, 기운 내요. 당신이 일궈온 이 따뜻한 집에서 우리 다시 예전처럼 웃으며 아침을 맞이해요. 내가 당신의 지팡이가 되고, 당신의 숨이 되어줄게요. 기적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했으니, 우리 한 번만 더 독하게 마음먹고 이겨내 봐요.
사랑해요, 나의 당신. 그리고 고마워요. 당신의 아내라서 나는 참 행복했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당신의 아내로 살고 싶어요. 부디 힘을 내주세요. 꼭 일어나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