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계절이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책상 서랍 깊숙한 곳, 낡은 배냇저고리 한 벌을 꺼내어 코끝에 대어봅니다. 이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이 보드라운 천만 만지면 그날의 차가웠던 병원 복도 공기와 당신의 가녀린 울음소리가 어제 일처럼 선명해집니다.
스물 남짓, 내 앞가림조차 버거웠던 그 시절의 나는 비겁했습니다. 너를 내 품에 안고 세상의 풍파를 견디기보다,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는 게 네게는 축복일 거야’라는 변명 뒤로 숨어버렸지요. 그렇게 네 손을 놓아버린 날, 제 세상의 절반은 영영 멈춰버렸습니다.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아. 그저 먼발치에서 건강하게 잘 자랐는지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속으로 이 말을 삼킵니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 너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네가 걸었을 걸음마, 네가 흘렸을 눈물, 네가 마주했을 수많은 생일날들에 내가 없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후벼팝니다.
하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이제야 겨우 평온해졌을 너의 삶에, 불쑥 나타난 나의 존재가 오히려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너를 아프게 하지는 않을지. 나를 원망하며 살지는 않았을지, 아니면 아예 기억조차 없는데 내가 너의 평화를 깨뜨리는 이기적인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닌지...
연락을 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이대로 평생 그리움만 껴안고 사는 게 마지막 남은 나의 도리일까요.
네게 닿지 못할 이 마음을 적어 내려가며 오늘도 묻고 싶습니다.
아가야, 너는 밥은 잘 먹고 다니니? 혹시 아픈 곳은 없니?
너를 버린 게 아니라, 너만은 지키고 싶었다고 말해주고 싶은 이 못난 마음을 세상은 이해해 줄까요. 너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은 이 밤이 너무도 길고 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