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같은 동네에서 만나 초중고 같이 다니며 계속 친했다.
대체적으로 허우대 좋고 별 탈 없는 인간이다.
아니, 오히려 평균 이상의 정의감도 있는 놈이다.
다른 놈이 내 뒤에서 기습했을 때 대신 뛰어들어 맞아준 놈이다.
다 좋다.
잘 놀았고, 잘 지내왔으며, 만나면 얘기도 곧잘 통한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한 명쯤은 있는 그런 친구인 것이다.
그런데..
문자로 대화하는 방식은 정말 최악이라 생각한다.
친구란 가끔은 편하게 떠들기도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다.
더군다나 잡설이라면 당연히 하고 싶은 말 얼마든지 해도 된다.
그런데 이 놈은 자기 차례로 넘어가기 전에 반응하는 법이 없다.
가령 내가 오늘 뉴스를 보니 어떻다.. 어쩌구 저쩌구.. 라고 할 때
"그러냐" "개웃기네" "그건좀 아닌듯"
이 정도 한 마디가 안 된다.
이 놈은 아예 받아주기 자체를 하지 않는다.
시늉조차 없다.
먼저 나온 말을 받고 자기 말 쏟아내는 게 대단히 어려운 일인가?
이 놈은 이런 호응어가 거의 없고 바로 지 껄 쏟아낸다.
나는 최신가요 얘기했는데 갑자기 지 주식 얘기를 하는 식이다.
분명 모든 말에 호응을 해줄 필요는 없다.
그런데 호응이 0에 수렴하는 경우를 떠올려 본 적 있는가?
얘기를 하는데 대답은 완전히 다른 헛소리만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도 빈도 90% 이상으로.
남자들은 사실 다들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대화방에서 A를 말하면 A'로 살을 좀처럼 보태지 않는다.
어떤 놈이 A를 말하면 다른 놈은 B를, 또다른 놈은 C를 말한다.
즉, 들어준다기보다 각자 지 관심있는 얘기만 지껄이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자신의 구미를 당기는 화제라면 말을 보탠다.
하지만 대부분 족구하는 마냥 얼마 이어지지 않고 토스한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겪은 남자들간은 대개 그랬었다.
난 남자지만 그런 화법을 혐오한다.
자기 말만 지껄인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개무시와도 다름이 없다.
3인 이상의 상황에서는 크게 티가 나지 않는 부분이기는 하다.
허공에 울려퍼지는 얼간이들의 소음의 뒤섞임쯤이 될테니까.
하지만 대화 주체가 단 2명, 1대1의 상황이라면?
자기를 제외한 단 하나의 대상을 두고 너무도 적나라해진다.
'나는 내 말 떠들테니까 너는 듣고 내 말에 호응이나 하던지.'
처음에는 뱉는대로 들어줬다.
들어주고 흐름에 계속 맞춰주기만 하니 어느새 호구가 돼있었다.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숱한 말 사이에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주제를 꺼낸다.
잠시 후 놈의 투명인간화에 내 메아리는 꺼진다.
쏟아지는 폭포 아래 한낱 인간이 저항하듯 답이 없다.
미친듯이 일상적이고 당연한 무시의 만연은 혀를 마비시킨다.
네 놈이 상전도 아니고 내가 왜 네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인지.
내가 테이크 없이 기브만 줘야하는 너의 감정 재미 짬통이냐?
어느 순간 너무나도 x같아져서 점차 나도 똑같이 대하게 되었다.
니가 뭐라 지껄이든 나도 내 x대로.
그랬더니 대화를 대화라고 할 수도 없게 된 것 같았다.
각자 지 할 말만 쏟아내는 오물 쓰레기같은 정치인식 대화.
이럴거면 말은 왜거는지 욕지거리를 되새김질한다.
감상적인 고민상담을 나누고 위로를 받고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으며 고작 잡담 범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필요했던 것은 그저 대화 주체 간의 최소한의 존중일 뿐이다.
내가 너를 듣고 있고 너가 나를 듣는다는 확인에 관한 것이다.
놈은 그런 최소한의 예의와 불문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같이 오물범벅이 되는 길을 왜 걷는지 짜증이 솟구쳤다.
결혼한 배우자가 네 놈 같았다면 끔찍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이 세월이 허무하게 이제는 정이 뚝뚝 떨어져간다.
이 친구는 이제 문자 잡담 연락할 생각이 사라졌다.
그냥 어쩌다 현실에서 얼굴이나 한 번씩 보면서 지내얄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