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장기화함에 따라 물자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전시 동원령이 내려져 각종 금속 제품은 물론 일반 가정의 솥, 수저 등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수탈은 날로 가혹해졌다. 이런 와중에 발행된 조선은행권 역시 물자부족 현상이 반영된 것이었다. 인쇄 방식이 요판인쇄에서 활판인쇄로 대체되는 등 저급해졌으며, 지불 약속 문구와 법적 발행 문안, 서무부장 인감 등도 삭제되었다.
1944년 2월에 갑(甲) 10원권과 갑 5원권, 10월 15일에는 신1원권(무번호권), 11월에는 갑 100원권, 11월 15일에는 갑 10원권(무번호권)이 발행되어 한 해 동안 5권종의 은행권이 신규 발행되었다. 당시 발행된 조선은행권 갑권과 중일전쟁 이전에 발행된 신1원, 신5원, 신10원권, 그리고 중일전쟁 직후에 발행된 신100원권을 비교해보면, 조선은행권 갑권은 활판인쇄에 인쇄도수가 1도씩 줄어들었고, 종래의 은행권 앞면에 기재된 교환문구만 바뀌었을 뿐 전체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1945년 2월 15일 발행된 갑5원권이 전시체제 하의 마지막 은행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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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발행된 조선은행권
이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인쇄방식이 요판인쇄에서 활판인쇄로 바뀌고 인쇄도수도 1도가 줄어 전시의 물자부족 현상을 말해준다.
한편 전시체제 하에서 조선은행권의 발행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를 위해 발권제도도 최고 발행액 제한제도로 변경되었다. 1945년 8월 14일에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인 1937년보다 약 17배 증가한 48억4천만원에 달했다. 그리고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이후 조선은행의 중국 진출로 인한 영업지역의 확대 등으로 우리나라 밖에서의 발행량 역시 증가했다.
1937년 말 31퍼센트를 차지하던 조선은행 발행액이 1945년 말에는 40퍼센트에 달해 조선은행권이 중국 전역에서 널리 유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행권 발행은 종전(終戰)이 임박한 1944년 말이 되자 31억4천만원으로 늘어났고, 종전 후에도 계속적으로 증가하여 1945년 말에는 87억6천만원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