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던져진 의문, '화두'는 사실 과거나 미래, 혹은 '저기'나 '거기'와 같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자 스토리텔링과 같습니다. 화두의 본질적인 효능은 이러한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우리를 "바로 지금 여기"로 갑자기 툭 튀어나오게 하여, 이 세상 자체가 고정된 실체가 없는 가상현실과 같음을 깨닫게 하는 데 있습니다.
1. 관념에서 실재로: 나옹 스님의 대화
고려의 나옹 선사가 원나라에서 천암 원장선사를 뵙자, 천암 선사가 물었습니다. "어디에서 왔는가?" 나옹 선사가 "정자선사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하자, 선사는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것은 과거의 근원을 묻는 관념적 질문입니다. 이에 나옹 선사는 느닷없이 답합니다.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과거나 근원을 묻는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바로 지금 여기'의 명백한 사실로 돌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여기' 역시 시시각각 변하며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다만 이것뿐!'**의 상태입니다. 앉아있는 행위만 있을 뿐, 그 행위를 하는 '앉은 자'는 없습니다.
2. 가상현실을 깨뜨리는 순간: 병 속의 거위
남전선사에게 육긍 대부가 다음의 유명한 화두를 제시했습니다.
"옛사람이 병 속에 거위 한 마리를 길렀는데, 거위가 점점 커서 병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병을 깨뜨릴 수도 없고, 거위를 죽일 수도 없으니, 어찌해야 거위를 꺼내겠습니까?"
이 '병 속의 새' 이야기 또한 가상현실입니다. 이때 남전선사가 대부를 부르자, 대부가 답했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나왔다!”
서로 부르고 답하는 '바로 지금 여기'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 '병 속의 새'라는 가상현실은 사라지고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실재로 '갑·툭·튀'한 것입니다.
3. 행위만 있을 뿐, 행위자는 없다
경전 속 스토리텔링인 **'안수정등(岸樹井藤)'**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끼리에 쫓겨 우물 속 등 넝쿨에 매달린 나그네의 이야기) 이 극한의 딜레마를 전강선사에게 제시하자, 선사는 바로 앞에 있던 엿을 입에 털어 넣고 한마디 했습니다.
“달다!”
오도 가도 못하는 가상현실의 딜레마를 깨고, 엿의 단맛을 느끼는 행위만이 남았습니다. 달다고 느낄 뿐, 그 느낌을 포착하는 '느끼는 자'는 없습니다.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다만 견문각지 할 뿐! 견문각지 하는 자(者)는 없습니다.
행위가 있을 뿐, 행위자는 없다. 행위가 곧 행위자다. 이것뿐!
[출처] 불교신문 3864호/2025년 4월1일자
논설위원·행불선원장 월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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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거사 (🌲🍁)
3개월 전
♤ 안물안궁 ♤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이야기
한 사람이 길을 가다 코끼리에게 쫓기게 되었다.
달아나다가 그만 깊은 우물로 떨어졌고 다행히 우물 가장자리의 덩굴 하나를 붙잡고 매달리게 된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물 바닥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몸을 틀고 있어 떨어지면 곧 죽을 형편이다.
위에서는 코끼리가 우물 가장자리를 맴돌며 지금이라도 떨어뜨릴 기세다.
그는 살기 위해 덩굴을 꽉 붙잡지만,
곧 위를 보니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며 그 덩굴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도망칠 길도, 버틸 길도 없다.
그런데 그때,
머리 위에서 벌집이 하나 보인다.
벌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그 벌집에서 꿀 한 방울이 떨어진다.
그는 무심코 혀를 내밀어그 꿀을 받아 먹는 상황이다.
여기서 어떻게 살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