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무학은 그래서 북악산이 아닌 지금의 경복궁의 위치에서 서쪽으로 좀 더 옮겨가 서촌마을 부근에서 인왕산을 등지고 동향을 하여 용마산을 마주보고 지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마주보는 용마산이 조산이 되어 주산인 인왕산과 높이가 비슷해 통치자가 외세의 기에 눌리지 않게 되고 관악산을 마주보지 않으니 강한 불기운의 액운을 피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좌청룡이 북악산이 되어 백호인 남산보다 높아 장손이 발복하고 왕위를 계승해 세대를 거쳐 계속 왕권이 안정됩니다. 그런데 권신인 유학자 정도전의 주장을 받아들여 남향을 하여 백호인 인왕산이 높고 청룡인 낙산을 압도해 차손이 계승해 왕권이 약해지고 불행한 일을 많이 겪습니다. 북악산의 형상도 용의 형상으로 관악산의 화기를 받아 북악산의 바로 앞은 용이 불을 내뿜는 위치라 통치자도 기에 눌려 힘들고 왕궁도 견디지 못한 것입니다. 유교는 장손인 적장자 계승을 원칙으로 하는데도 맞지 않는 모순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관악산은 주산인 북악산보다 2배나 높아 통치자가 외세에 기운이 눌리고 남방의 화기운은 화재나 전란을 싱징하며 국가는 일본입니다. 일본에 2번이나 나라를 짓밟혀 1번은 위기를 넘기지만 2번째는 조선이 멸망합니다. 새로운 나라 한국이 들어서고 광화문광장에 일본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순신상을 세우고 혼마찌가 있었던 곳에는 이순신의 호를 따서 충무로라고 이름을 붙여 비보책을 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