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살고 싶다 ... 6회
제 6장,
지영은 시간이 나는 대로 열심히 나물을 띁으러 다닌다.
보리쌀도 없어 된장을 넣고 나물을 끓어서 동생들을 데리고 허기진 배를 달래곤 한다.
다행히 김인수는 쌀과 보리 그리고 간 고등어 두 어 마리를 들고 집을 찾아온다.
집을 나선지 이 십 여일 만이다.
지원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던 가방이나 새 옷은 보이지 않는다.
김인수는 집을 한번 둘러보더니 아이들을 바라보다 그대로 다시 집을 나선다.
“우와!
누부야!
하얀 쌀밥을 해서 이 고기하고 묵자!“
지태는 쌀을 만지면서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영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이제는 아버지를 믿을 수가 없었던 지영이다.
지영은 순이 할머니를 찾아간다.
“지영아!
니가 여그는 웬일이고?“
“할매여!
시방 아부지가 오셨다 다시 나갔슴더!“
“그래?
양석은 가져 왔드나?“
“예!”
“근데 와?”
“할매여!
쌀을 쪼매만 남겨두고 보리쌀하고 바꿀데가 없능교?
글고 고등애 한 마리만 남기고 그것도 보리쌀하고 바꾸고 싶은기라예!“
“내사 니 마음을 알겠구마!
집에 가 있그라!
내사 퍼뜩 알아보고 느그 집을 갈끼니께!“
순이 할머니는 지영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보리쌀이나마 많이 두고 동생들을 굶기고 싶지 않다는 지영의 뜻이었다.
순이 할머니는 잠시 돌아다니다가 지영의 집으로 온다.
“저기 이장 집에서 지영이 말대로 하기로 안했나?”
“할매여!
고맙심더!“
이미 지영은 쌀을 조금 덜어내고 고등어 한 마리만을 남기고 다시 묶어 두었다.
“누부야!
그것을 어디 가져 갈라카노?
아부지가 우덜 묵으라고 가지고 온 것이데이!“
지원은 누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원아!
이 누부야가 보리쌀하고 바꿀라칸다.“
“와 보리쌀과 바꾸노 말이다.
내는 싫다!“
“아부지가 또 언제 양식을 갖고 오실지 아무도 모른다.
있는 대로 묵고 굶을라카나?“
“아이다!
아부지가 또 갖고 오실끼다.“
지원은 한사코 누나의 행동을 저지한다.
그러나 지영은 그런 지원이의 반대에도 순이 할머니의 손에 쌀과 고등어를 내어준다.
“으아앙..........
누부야 밉다!
내 아부지 오믄 모다 일러 줄끼다.“
순이 할머니는 지영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양의 보리쌀을 가져다주신다.
“이장님 댁이 지영이 니 생각이 기특다고 이리 후하게 안 보냈나?
그라니 내중에 만나믄 고맙다고 인사나 하그라!“
“예!”
지영은 악착스럽게 나물을 캐다 삶아서 말린다.
물론 순이 할머니에게 배운 대로 하는 것이다.
나물을 캐고 잔가쟁이지만 겨울을 생각해서 나무도 열심히 해 온다.
이제 지영과 지원은 학교에 갈 생각을 하지도 못한다.
지원 또한 밖에 나가서 노는 시간보다 누나를 따라 다니면서 나물을 캐거나 땔감을 하기에 거의 하루를 소비한다.
어린 아이들 스스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부모에게 기댈 곳이 없는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이 살아가야할 방법을 터득한다.
어린 지영의 손은 이미 찟기고 터지고 엉망이었다.
“누부야!
오늘도 또 죽을 묵어야 하나?“
“죽이라도 굶지 않고 묵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그것도 쌀하고 바꾸었으니 그나마 지금 꺼정 묵을 수 있는 것이 아인가?“
“내사 그것도 모르고 누부야를 밉다고 했제?
미안하데이!“
지원은 쑥스럽다는 표정을 보이며 씩 웃는다.
“개안타!
누부야도 그리 하고 싶어서 한 것은 아이다.
죽이라도 묵어야 배가 안고플 것이 아인가?“
“맞다!
죽도 묵어보니 맛이 좋다!“
그렇게 가을을 또 깊어만 간다.
그동안 김인수는 가끔씩 아이들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양식을 가져다주고는 이내 집을 나서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도 아버지가 집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영은 어떻게 하든 동생들을 굶기지 않을 방법이 없을까하는 고심을 한다.
가을이 되자 들판에서는 가을걷이들이 한창이다.
지영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집 저집의 바쁜 일손을 거들고 나선다.
이제 열 살이 된 지영의 고사리 손도 필요한 때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지영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지영이 거들고 나서는 것을 말리지는 않고 있다.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쌀을 조금씩 주는 것으로 지영의 잽싼 몸놀림을 기특해 하기도 하고 불쌍하게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저 어린 것이 즈그 동생들 굶기지 않으려고 저리 애를 태우고 있으니 참말도 기특하기도 하고 불쌍타!”
“누가 아이라나!
저 애비가 즈그 자석들 저리 고생하고 있는 것을 알기나 할지......쯧쯧쯧!“
“오즉하면 자석들을 놔두고 즈그 어매가 도망을 가뿌렸겠나?”
사람들이 뭐라 하건 지영은 매일 조금씩 생기는 먹거리가 좋기만 했다.
“지원아!
니는 부지런히 낭구를 해야 한데이!
이자는 아부지를 믿으면 우린 굶어 죽거나 얼어 죽지 않겠나?“
“누부야!
내도 놀지 않고 부지런히 낭구를 하고 있다.“
“그래!
우리는 우애든지 악착스럽게 살아야 한다.
엄마가 우릴 버렸어도 아부지가 우릴 잊어 버려도 우린 살아야 한데이!“
지영이의 그런 다부진 성격이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어쩔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김인수의 아이들이 커다란 짐이었다.
부모가 모두 돌보지 않는 아이들이다.
그렇다고 마을 누군가가 그 아이들을 돌 봐줄 정도로 생활 형편이 나은 집도 없다.
“그 아들을 이대로 두면 굶어 죽거나 얼어 죽지 않겠능겨?”
“지영이가 하는 거로 바서는 어디 굶어 죽기야 하겄나?
아적 즈그 애비도 간간히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을 보이 우리가 어쩌겠노?“
순이 할머니는 아이들 편을 들고 나선다.
마을에서는 그대로 겨울을 방치할 수는 없다고 모두 고아원으로 보내자는 의견들이 분분했던 것이다.
그런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려하는 순이 할머니었다.
“그라도 즈그들 딴에는 마을 사람들 신세를 지지 않을라 카는 것이 을매나 신퉁하고 대견스러운 거이가?
그라니 우리가 쪼매씩만 낭구를 해주면 얼어 죽지는 않는다.“
“그것도 한 두 번이제 매양 어디 그랄 수 있능겨?”
“내사 은제 매양 그라자카나?
이번 겨울만 그리 해주다보믄 즈그 아배가 있응게 우찌 안 되겠나 싶어서 그라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나이가 많은 순이 할머니의 생각을 무시 할 수는 없다.
“그라믄 아직 그다지 춥들 안으니 좀더 두고 보입시더!
즈그 애비가 내쳐 몰라라 한다면 각자 알아서 낭구라도 들나줘야 안 되겠능겨?“
순이 할머니의 의견대로 나무를 각자 성의껏 해 주기로 하고 지켜보기로 한다.
지영은 자신들 때문에 마을에서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행여나 동생들을 고아원에 보내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마음을 써 오면서 더 열심히 나무를 하고 이미 수확이 끝난 밭에 나가서 고구마와 감자 콩과 나락의 이삭을 주워 모은다.
그것들이 얼마나 훌륭한 식량이 되어 준다는 것인지를 이미 지영이는 터득을 하고 있었다.
김인수는 아주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잠시 집에 들린다.
아이들의 먹을 식량과 약간의 간식거리를 가지고 온 김인수다.
잠시 둘러보고 집을 나서려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산에 가서 나무를 몇짐 져다 놓는다.
적어도 아이들이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일만은 면하게 해 주고 싶었다.
부엌에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해다 놓은 잔가지들과 삭정이들 뿐이었다.
그것을 가지고는 엄동설한인 겨울을 날 수가 없음을 잘 알고 있는 김인수는 자식들 생각에 땀을 흘리면서 나무를 해 져다 나른다.
“누부야!
아부지가 이자는 집에 있을라카능거이 아인가?“
“그라믄 을매나 좋겠노?”
“바라!
아부지가 저렇게 낭구를 안하고 있나?
그라이 이자 아부지랑 함께 사는 거이 맞데이.“
지원이는 두 눈을 반짝거리면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김인수는 그런 아들이 마음을 모른 척 어느 정도 나무가 쌓이자 또 다시 집을 나선다.
“아부지!
추분데 그냥 집에 계시이소!“
집을 나서는 아버지를 지영은 잡아본다.
그러나 김인수는 그런 딸아이를 흘깃 바라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아무런 말도 없이 그대로 훌쩍 대문을 나선다.
부모로서 자식들을 대할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김인수다.
아직 어린 자식들을 보살피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를 하는 부모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는 자책으로 자식들의 얼굴도 자세히 볼 수가 없다.
지영은 아버지가 그대로 가 버리시자 동생인 지원이를 차마 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지원이는 아버지를 제일 좋아하는 아들이다.
언제나 아버지는 지원이를 보기만 하면 우리장남우리장남 하면서 얼마나 사랑해 주셨던가?
그런 지원이를 아버지는 보살피지도 못하고 학교엘 보낼 수도 없다.
아마 아버지는 자신과 지태보다 지원이 보기가 민망스러워서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못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영은 아끼고 아끼면서 동생들의 배를 채워주려 노력을 한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두끼를 죽을 쑤어서 먹어야만 했다.
“누부야!
오늘 저녁도 또 죽을 묵어야 하나?“
“응!”
“오늘 저녁은 밥을 해 도고!”
“내도 밥을 묵고 싶다.
누부야 그라지 말고 밥을 해도고!“
어린 지태마저 밥을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린다.
“누부야도 밥이 묵고 싶다.
우리 쪼매만 참자.
아부지가 오시면 그때는 누부야가 밥을 해 줄끼다.“
“싫다.
아앙앙.........
누부야는 밉다.
엄마는 밥을 해 줬는데 누부야는 와 맨날 죽만 해주노?“
지영은 우는 지태을 달랠 수가 없다.
죽을 끓어서 먹어도 양식은 맨날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우는 동생을 달래려고 밥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매일 한주먹씩 보리쌀을 아끼고 아껴도 줄어드는 양식을 채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봄에 띁어서 말려 놓은 나물들도 이제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감자와 고구마도 얼마 남지를 않았다.
아버지가 언제 온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걱정이 덜 될 것만 같은데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집에 오실 때마다 거의 빈손으로 오시는 때가 없었다.
무엇을 가져오시든 자신들의 먹을 것을 들고 오시는 아버지였다.
이제 눈이 내리는 겨울이다.
눈이 쌓여있는 산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 겨울을 넘기려면 이런 죽이나마 먹어야만 했다.
땔감은 그리 넉넉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아주 추운 겨울을 넘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 지영은 그래도 다소 마음이 안심이 된다.
지태는 밥상앞에서도 투정을 부리면서 울음을 그치지를 않는다.
엄마가 계실 때도 남보다 허약한 지태는 자주 보채고 아프기를 잘 하던 아이다.
그런 지태를 볼 때마다 지영은 작고 어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다.
그동안 지태의 모습은 너무나 야위었고 볼품이 없을 정도로 못쓰게 변해 버렸다.
지영은 엄마가 너무 밉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태는 울면서도 죽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다.
그래도 허전한 속을 채울 수가 없는 어린 동생은 내내 징징거리면서 보챈다.
“누부야!
내는 과자도 묵고 싶고 빵도 묵고 싶다.“
“그래!
아부지가 오시면 우리 지태가 묵고 싶다카는 거 많이 사 줄끼다.“
“참말이가?
참말로 내 묵고 싶다카는 거 다 사줄끼가?“
“아부지가 모두 다 사오실끼다.”
“아부지 언제 오는데?”
“그건 누부야도 잘 모르지만 아마 눈이 다 녹으면 안 오시겠나?”
지태는 하염없이 하얗게 쌓인 눈만을 바라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