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살고 싶다 ... 5회
제 5장,
봄의 기운이 완연한 춘삼월이 되어간다.
지영과 지원은 학교에 갈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누부야!
오늘은 엄마가 안 오겠나?“
지원은 멀리 동구 밖을 내다보면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린다.
“누부야!
엄마가 내 책가방이랑 옷이랑 사 가지고 안 오겠나?“
“글씨?..................”
지영은 동생이 무엇을 물어 보는지 알고 있다.
새로 입학을 하게 되면 새 가방이랑 새 옷이랑 있어야 하는 것이다.
헌데 아버지는 아직도 지원의 가방도 옷도 사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내 아부지한테 물어 볼란다.”
지원은 방에서 누워 있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운다.
김인수는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밖에서 두 남매의 이야기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이 한 푼도 없다.
이제 양식도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 가서 돈을 구해서 아이들의 양식을 마련해 주어야만 했다.
아이들 학교에 보낼 생각은 김인수에게는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다.
“아부지!
내도 책가방이랑 새 옷도 안 사주는겨?
학교엘 갈라카믄 있어야 안 되능겨?“
그러나 김인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아부지!”
어린 지원은 그런 아버지를 자꾸만 졸라댄다.
“알았다카이!
이제 그만 하그라!
아부지가 나가서 사오면 될꺼이 아인가?“
김인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대로는 더 이상 집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디를 가든 무슨 동냥질을 하던 아이들의 양식을 구해와야만 할 것이다.
“아부지!
어디 가시능겨?“
지영은 아버지가 외출을 하신다는 것을 알고 묻는다.
“오야!
아부지가 나가서 느그들 학교에 갈 준비를 해야 안되겠나?
그라니 어디 싸돌아 댕기지 말고 동생들 잘 보고 있그라!“
“예!
그라믄 퍼뜩 댕겨 오이소!“
김인수는 휘적휘적 느린 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그러나 김인수는 딱히 어딜 갈만한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가는 곳은 자연히 놀음방이다.
그는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그동안 참고 있었던 소주를 빈속에 들이킨다.
“어허!
이 사람이 겨우 내내 보이지 않아서 죽은 줄 알았더니 안작도 살아 있네 그려!“
놀음을 하던 사람들이 김인수를 보자 모두 한마디씩 비야냥 거린다.
그러나 김인수는 그런 말들에는 익숙해져 있다는 듯이 개의치 않고 술만 마신다.
그렇게 날이 지새는 줄도 모르고 담배 연기 찌든 속에서 술을 마시고 그곳에서 꼬부라져 잠이 들곤 한다.
이제 그의 안중에는 자식들의 걱정은 사라지고 없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이제 양식이 바닥이 났다.
“누부야!
지태가 배가 고프다고 아까부터 징징거리고 안 있나?“
“쪼매만 기둘리라 캐라!
오늘은 아부지가 오실끼다.“
“참말이가?
시방 누부야 말이 참말이제?“
“내사 언제 거짓부렁 한거이 있나?
오늘은 아부지가 양식이랑 니 가방하고 옷을 들고 오실끼다.“
“누부야!
배가 고프다.
밥 줘!“
지태는 아까부터 밥을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지태야!
쪼매만 참그라!
아부지가 쌀을 가 오시면 이 누부야가 밥을 많이 해서 줄끼니까!“
“잉잉!
아부지가 언제 오나?“
지태는 징징거리면서도 아버지가 오신다는 말에 멀리 동구 밖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져도 아버지는 감감 무소식이다.
그들 삼남매는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고 있었다.
지영은 물을 떠다 동생들에게 먹인다.
“누부야!
물을 암만 마셔도 배가 부르지 않다.“
지원은 물을 마시면서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러다 아버지마저 오지 않으시면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작은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누부야!
아부지도 우리를 버리고 도망 안 갔나?“
“야가 시방 뭔 소리 하고 있능겨?
아부지가 와 도망을 간단 말고?“
지영은 눈을 부릅뜨고 지원을 바라본다.
금방이라도 주먹으로 지원을 때릴 것만 같다.
“그라몬 와 아작도 아부지가 오질 않노 말이다.”
“그기야 아부지가 바빠서 그러는 거이 아인가?
니 또 한번 그런 말을 하믄 이 누부야가 때리삔다.“
지원은 지영이 정말 때리기라도 할까봐 한 걸음 물러앉는다.
“일찍 자자!
날이 너무 컴컴해서 아부지가 낼 오실랑가보다.“
“잉잉~~~
누부야!
밥 도고!“
“지태야!
오늘만 배가 고파도 꾹 참고 자뿌자!
낼이면 아부지가 오실끼다.
이 누부야가 안아 줄끼니까 배가 고파도 꾹 참자!
우리 지태는 누부야 말도 잘 듣고 배가 고파도 잘 참재?“
그러나 지태는 한참을 울다 제풀에 지쳐서 잠이 든다.
지영은 쉽게 잠이 오지를 않는다.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계속 요동을 치면서 지영의 신경을 긁어 대고 있다.
“아부지는 우에 된 일이고?
엄마 맨치로 설마 우덜을 버리고 도망 가뿌지는 않았겠지......“
어린 지영은 마음이 불안하고 앞날이 캄캄해져 온다.
봄이면 올 줄 알았던 엄마는 아직 아무런 소식조차 없다.
지영의 눈에는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떻게 동생들을 데리고 살아가야할지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를 않는다.
그렇게 지영은 울다 잠이 든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는지 순이 할머니의 음성에 지영은 눈을 뜬다.
“아이구!
야들아!
다들 지쳐서 인나지도 못하는 모양이고마!“
“할무이요!
지는 잠이 깼슴더!“
“그래!
그럼 퍼뜩 인나서 어여 이 밥이라도 한술씩 뜨거라!
어린 것들이 무신 죄가 있다고 이리 고생을 시키노 말이다.“
순이 할머니는 바가지에 보리밥에 나물을 얹어서 가져오신 것이다.
“할매여!
할매도 모지라는 밥인데 우에 가져 오셨능겨?“
“그래도 우에 모린척 할 수가 있노 말이다.
느그 아배는 느그들이 이리 고생을 하고 있는 줄도 생각하지도 않을끼구마!“
“와 안 하겠습니꺼?
아부지 마음대로 돈이 생기지 않아서 그라겠지예!“
“쯧쯧쯧.......
그라도 지 애비 험담하는 것은 싫나?“
“.................”
“알긋다!
내사 마 아무 말도 안 할끼니까 어서 동생들 깨워서 이 밥이나 나눠 묵고 나랑 나물을 캐러가자.“
“나물이예?”
“오야!
봄철이면 들판에 나가 보믄 맨 천치로 먹는 나물 아인가?
내 그것을 갈쳐 줄끼니까 띁어다가 죽을 쑤어 묵어야 한데이.“
“예!”
지영은 동생들을 깨워서 밥을 나누어 먹고는 동생들을 데리고 순이 할머니를 따라 나선다.
“바라!
이거이 쑥이라는 거이고 이거이 냉이라칸다.
잘 보고 똑 같은 것으로 골라서 띁거래이!“
지영은 순이 할머니가 건네주는 나물을 자세히 보고는 똑같은 것으로 골라서 띁는다.
“누부야!
이거 맞제?“
지원과 지태도 누나를 따라서 나물을 캔다.
“봄이 되면 보릿고개라서 누구든지 다 고생들을 안하나?
그럴때는 양석을 아껴서 묵을라고 이 나물들을 캐다가 죽을 쑤어서 묵는기다.“
“어떻게 하는 겁니꺼?”
지영은 나물을 보고 할머니를 보면서 묻는다.
“오늘은 내 니한테 죽을 쑤어 묵는거를 갈칠라 안하나?”
“예!"
지영은 열심히 쑥을 띁고 냉이를 캔다.
얼마나 많이들 띁어 갔는지 보이는 것마다 이미 캐고 난 뒤였다.
그러나 지영은 열심히 쉬지 않고 나물을 캔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 지나고 나자 바구니에는 제법 많은 나물들이 쌓였다.
“흙이 많으니께 아주 깨끗하게 여러 번 씻어야 한데이.”
다듬어서 씻는 것까지 순이 할머니는 자상하게 가르쳐 주신다.
순이 할머니는 언제 가져 오셨는지 보리쌀을 가져와 씻는 법도 가르쳐 주신다.
“지영아!
느그는 이런 죽을 묵어 보지 않았제?“
“예!”
“이자부터는 양석을 아껴서 묵는 법을 알아야 한데이.
느그 아배가 언제 양석을 구해다 줄지 모르니께 니가 이렇게라도 해서 양석을 아껴야 동생들과 살아 남을 수가 있을 거이다.
바라, 이 솥에 이렇게 양석을 조금만 넣고 물을 이만이나 붓는다.
그리고는 나물들을 넣고 딘장을 쪼매만 넣는기라!“
지영은 하나라도 놓칠새라 열심히 할머니가 하시는 것을 본다.
보리쌀로 밥을 짓는다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한참 만에 솥을 열어본 지영은 솥 안 가득 들어 있는 나물죽을 본다.
이 정도의 양이라면 동생들과 먹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흐뭇해져온다.
오늘밤은 배가 고파서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라지기도 한다.
“누부야!
이게 아까 그 나물을 넣고 끓인 거이가?“
“그래!
이제는 우리도 이런 죽을 묵어야 한데이.“
“난 싫다!
누부야!
난 밥도고!“
어린 지태는 투정을 부린다.
“지태야!
아부지 오시믄 밥을 해줄끼니께 이 죽이라도 어여 묵자!“
“잉잉잉........
엄마!“
“니 자꾸 그카믄 이 엉아가 때리 줄끼다!”
“아앙!”
지원의 나무람에 지태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진다.
“지원아!
너무 그카지 마라!
아직 지태가 뭘 알겠노?“
“누부야 알아서 하그라!
난 모른다.“
지원은 죽그릇에 얼굴을 묻고는 정신없이 먹기에 바쁘다.
“지태야!
어서 묵자!
엉아가 우리 지태 죽도 다 묵어 뿔면 우야노?“
울던 지태는 형이 제 몫을 마저 먹어 버릴까봐 울음을 그치고 정신없이 죽 그릇에 얼굴을 묻고 먹기 시작한다.
그런 동생들을 바라보면서 지영은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자신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죽 그릇을 내려다본다.
지금까지 먹어 보지도 못한 음식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었어도 엄마는 자신들에게 이런 음식을 한번도 해 준적이 없었다.
보리밥이라도 끼니를 거르게 한 적도 없고 죽을 쑤어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죽이라도 거르지 않고 먹을 수가 있게 될지도 걱정스럽다.
지영이의 한숨은 방바닥이라도 내려앉을 것만 같다.
아직 어린 지영이지만 너무나 어른스럽게 생각이 커져 있었던 것이다.
동생들과 살아갈 앞날이 캄캄해져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