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군더더기 없는 삶이었다. 긴 여행의 끝자락에 서서 내 인생의 궤적을 반추해보니,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고 모든 것이 적절했다.
나는 아크의 3구역 청소부였다. 거대한 가축 사육장의 가장 낮은 곳, 기계 팔이 닿지 않는 구석진 곳의 오물을 닦아내는 것이 내 업이었다.
그곳의 소들은 평온했다. 유전자가 개량된 그 짐승들은 좁은 칸에 갇혀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울부짖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옅은 안개를 마시며 하루 종일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나는 녀석들의 맑고 텅 빈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도살장으로 향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도 녀석들은 꼬리를 흔들었다.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놈들은 삶이 계속될 거라 믿었다.
“저 놈들이 가끔 부러워”
이젠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그곳의 관리자는, 가끔 우유를 주며 나에게 말했다.
내가 태어난 이 곳, 아크의 시스템은 명확했다. 우리는 ‘우주 생태 연구 프로젝트’의 일원으로서, 이곳에서 태어나 노동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는 의무를 지녔다. 조건은 까다로웠지만 공정했다. 만 50세까지의 근속.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신체 및 정신 건강 등급'을 A급으로 유지할 것. 범죄 이력이 없어야 하며, 무엇보다 과도한 스트레스 수치가 기록되어서는 안 됐다. 스트레스는 세포를 산화시키고 노화를 앞당긴다는 이유였다. 그것들을 지키면 은퇴를 하고 지구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지. 1세대는 지구에서 태어났다던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구가 이상할만큼 그리웠다.
30살 무렵 만난 지수와의 기억은 선명하다. 연구소에서 가축의 뇌파를 관리하던 그녀는 늘 차분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격정적으로 타오르기보다는 은은하게 서로를 데웠다. 적당한 시기에 사랑을 속삭였고, 적당한 크기의 다툼을 했으며, 서로의 체온이 그리워질 때쯤 화해를 했다. 너무 뜨거워 데일 일도, 너무 차가워 얼어붙을 일도 없는 온도. 그 균형 잡힌 관계가 내 삶의 기반이 되었다.
내 아들, 연이가 태어난 그 날을 기억한다. 그 작고 붉은 덩어리를 품에 안았을 때, 내 가슴 안쪽에서 뭉근하게 차오르던 그 충만감을. 아이가 처음 뒤집기를 하던 날,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소리 죽여 환호했다.
연이가 자라남에 따라 내 시간은 그 아이에게로 옮겨가는 듯했다. 연이가 일곱 살이 되어 처음으로 중력 제어 자전거를 배우던 날이 떠오른다. 넘어지려는 자전거 뒤를 붙잡고 나는 3구역 공원을 몇 바퀴나 뛰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아이의 웃음소리에 내 심장은 터질 듯 벅차올랐다. 그날 밤, 나는 거울 속에서 눈가에 깊게 패인 주름 하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서글프지 않았다. 내 젊음이 아이의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연이가 열다섯이 되었을 때, 녀석은 처음으로 내 팔씨름을 이겼다. 식탁 위에서 내 손등이 쿵 하고 바닥에 닿았을 때, 나는 내 손등 위로 튀어나온 푸르스름한 혈관과 거칠어진 피부를 보았다. 반면 녀석의 팔뚝은 단단하고 매끄러운 근육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빠, 이제 내가 더 세네?" 녀석의 목소리는 변성기를 지나 굵어져 있었다. 나는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내 흰머리가 늘어갈수록 아이는 듬직해졌고, 내 눈이 침침해질수록 아이의 눈동자는 총명하게 빛났다. 나의 생명력이 오롯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과정, 그것은 숭고한 희생이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그렇게 50년. 내 육체가 쇠락하고 내 정신이 가장 원숙해진 시기. 은퇴식이 있던 날, 나는 내 인생이 완성되었다고 느꼈다. 성인이 된 연이는 내 짐을 들어줄 만큼 건장했고, 지수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동료들의 힘찬 박수와 환대 속에서 나는 확신했다. 나는 성실했고, 사랑받았으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고. 귀환선에 오르며 나는 캡슐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고, 눈을 감으며 다가올 지구의 푸른 바다를 그렸다. 정말, 완벽한 마무리였다.
그래. 행복한 삶이었지.
——
눈을 뜨니 풍경이 좀 달랐다.
내가 누워있는 곳은 푹신한 캡슐이 아니라, 차가운 쇠갈고리 위였다. 내 손과 발은 낡아빠진 사슬에 묶여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 동료들도, 내 친구들도, 다들 짐승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웃긴 건, 다들 표정이 참 좋다는 것이다.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몽롱하게 웃고 있었다.
창밖을 보았다. 지구는 없었다. 대신 저 앞에, 온 우주를 덮을 만큼 거대하고 붉은... 살덩어리가 있었다. 행성이 아니다. 저건 그냥 위장(胃臟)이다. 끝없이 꿀렁거리는 붉은 주름 사이로 수천 개의 아가리가 쩍 벌어져 있고, 우리를 태운 이 고철 덩어리들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아, 이제야 알겠다. 왜 소들을 행복하게 키웠는지. 왜 '과도한 스트레스 금지'가 귀환의 필수 조건이었는지. 왜 내가 늙어가는 것을 그토록 기쁘게 받아들였는지!
질긴 고기는 맛이 없으니까. 고통에 절어 뻣뻣해진 영혼은 씹는 맛이 없으니까. 내 젊음을 바쳐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그 숭고한 희생정신? 그건 내 영혼을 부드럽게 숙성시키기 위한 마리네이드였다.
지수야, 연아. 우리가 나눴던 사랑이, 그 애틋했던 기억이, 전부 조미료였다! 무엇인가가 나를 요리하고 있던 거야.
속이 메스껍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내가 흘린 땀방울, 내가 느낀 보람, 내 아들을 안았을 때의 그 벅찬 감동. 그 숭고하고 아름답던 모든 순간이, 고작 저 거대한 위장을 만족시키기 위한 감칠맛에 불과했다니. 우리는 우주를 항해하는 개척자가 아니었다. 그저 잘 포장된 도시락이었다.
저 붉은 아가리가 보인다. 놈이 나를 보며 침을 흘리고 있다. 싫다. 죽고 싶지 않다. 나는 먹이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나는... 나는 연이의 아버지다. 나는 지수의 남편이다! 살려줘. 제발 살려줘. 지구 따위 필요 없어. 그냥 그 좁은 방으로 돌려보내 줘. 다시 청소부가 되어도 좋아. 똥을 치워도 좋아. 그냥 숨 쉬고 싶어.
하지만 내 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50년 동안 안락함에 절여진 내 근육은 반항하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그저 준비된 식량처럼… 도살을 가만히 처다볼 수 밖에 없었다. 쇠갈고리가 움직인다. 내 차례다. 비참하다. 너무나도 비참하다. 내 인생의 모든 의미가, 저 아가리 속에서 씹히고 으깨질 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