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3장 10절 말씀]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웃사가 선한 의도로 하나님의 궤를 붙잡았는데도 죽임을 당한 이유는, 단순히 '궤를 지키려 한 행동' 자체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명령에 대한 순종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1. 하나님의 명령은 '방법'까지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궤는 원래 레위인의 어깨에 멜대로 메어져야 했고(출애굽기 25장 14절 말씀), 절대 직접 만져서는 안 되었습니다(민수기 4장 15절 말씀). 그런데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의 방식을 따라 소 수레에 하나님의 궤를 실었습니다. 웃사는 자신도 레위인이었지만, 평소에 하나님의 궤를 덮는 일을 맡은 고핫 자손이 아니라 다른 가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를 어기고 금지된 자가 금지된 방식으로 하나님의 궤를 만진 것입니다.
2. 의도보다 '거룩함'이 우선입니다.
웃사의 의도는 하나님의 궤가 수레에서 떨어지는 걸 막으려는 '좋은 의도'였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자신의 거룩하심이 인간의 생각보다 높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죄인을 심판하시고 구별된 방식으로만 접근해야 하는 '성령님의 임재'였습니다. 웃사가 죽은 것은 그 행동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평범한 물건처럼 다루는 태도"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방법과 순종'이 '열정과 의도'보다 우선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불순종이 됩니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경외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 교회는 너무 편안하고 친근한 하나님만 강조하기 쉽지만, 웃사 사건은 하나님이 여전히 '두려우신 분'임을 상기시킵니다.
·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생각이나 긴급한 상황에 의해 규칙이 바뀌지 않습니다. 소가 뛰었다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웃사는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런 특별한 경우에는 하나님이 이해하시겠지"라는 안일함을 버리라는 경고입니다.
웃사의 죽음은 "하나님은 자신이 명령한 예배의 방식과 거룩함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으신다" 는 무거운 교훈입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와 섬김이 아무리 열정적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면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내가 지금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인가?"라고 자신에게 질문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겸손히 두려움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