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복음을 전한 최초의 중국인 선교사는 천주교의 주문모(周文谟, 요한) 신부입니다.
🇨🇳 주문모 신부 (周文谟)
· 파견 시기와 배경: 1784년 중국 북경에서 이승훈(베드로)이 세례를 받은 후, 조선 교우들은 꾸준히 사제 파견을 요청했고, 이에 1794년 북경의 주교가 당시 사제였던 주문모 신부를 조선에 비밀리에 파견했습니다.
· 선교 활동과 영향: 조선에 입국해 숨어 지내면서 성사를 집행하고 교리를 가르쳐, 불과 6년 만에 신자 수를 1만 명으로 급성장시켰습니다.
· 순교와 의의: 그는 조선 천주교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라는 공식 직함을 갖고 파견된 인물이며, 1801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순교했습니다. 이후 2014년 교황 방한 당시 '복자' 품에 올랐습니다.
🇨🇳 여항덕 신부 (余恒德)
주문모 신부 순교 후 조선 교회의 사목 공백을 메우기 위해 두 번째로 파견된 중국인 선교사입니다.
· 조별 입국 활동: 1834년 입국하여 비밀리에 교회를 이끌며 신자들의 신앙을 지켰고, 신자 지도자들에게 교회 직책을 위임하는 등 교회 조직을 정비했습니다.
· 이름의 변화: 원래 중국 이름은 '여항덕'이었으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조선 입국 후 '유방제(劉方濟)'라는 조선식 성명을 사용했습니다.
· 말년: 활동이 알려져 1837년에 체포되어 추방되었고, 이후 중국 본국에서 사목하다가 1854년 선종했습니다.
· 칼 귀츨라프 (Karl Gützlaff) - 최초로 조선을 방문한 개신교 선교사: 가장 먼저 조선 땅을 밟은 개신교 선교사는 독일인 칼 귀츨라프(1803-1851)입니다. 그는 1832년 7월 충청도 고대도에 도착해 20일간 머물며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고 한문 성경을 전했습니다. 이는 개신교 복음 전파의 효시로 평가받습니다.
· 로버트 토마스 (Robert J. Thomas) - 피를 흘리며 씨앗을 뿌린 선교사: 귀츨라프보다 늦은 1866년에 조선에 도착한 영국인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는, 평양 대동강에서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휘말려 순교했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성경을 나눠주며 복음을 외쳤고, 그의 피 뿌려진 성경은 이후 평양 대부흥운동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 언더우드 & 아펜젤러 - 정식으로 선교 사역을 시작한 선교사들: 1885년 4월 부활절, 미국 장로교의 호러스 언더우드와 북감리교의 헨리 아펜젤러가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교육과 의료 사업을 통해 본격적이고 지속적인 선교 활동을 펼쳐, 오늘날 한국 교회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들로 평가받습니다.
이처럼 초기 선교사들은 시기와 역할은 달랐지만, 각자 시대에 복음의 씨앗을 심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