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부인과 이혼하게 된 동기 - 그냥 싫어서
멜 자료를 뒤지다가 2011년 6월9일 나눈 멜 대화 내용.
받는 사람: "000" <000000@yahoo.co.kr>날짜: 2011년 6월 9일 (목요일)
10년 전인가 이화대 여 교수가 박사 논문 쓰느라 우리 집에 와서 인터뷰시 당신이 하던 말...<그냥 싫은 거지요.>
당신도 내가 그냥 싫은 거- 논리와 근거가 있어서 보다 그냥 싫은 거.
그만큼 서로 다른 거지. 벌써 징조는 그때부터 뚜렷했는데 그동안 종교와 자식 때문에...
이젠 그냥 싫은 거 그냥 두어서는 안돼. 너무 짧은 인생, 그리고 당장 닥친 사역의 중과부적 일들을 감당키 어려워.
그리고 그냥 싫은 거에 그 어떤 종교나 다 큰 자식 구실로 더는 일생 말년까지 망치지 말아야.
중계동 집 아들때문에 부탁하니 그대로 두지뭐.-
여름방학 아들 오는 것 가장 반갑지-근데 왠지 올 여름은 안 왔으면 해.
풍선 도우려고 그 먼 곳에서 온다는 것도 그렇고. 아들도 자기 계획이 있을 덴대 침해하고 싶지 않고...차라리 좋은 친구와 함께 미국대륙, 캐나다 등 반 무전여행으로 배낭여행떠났으면...미국에 살고 있는데 미국을 잘 알기 위해. 아니면 방학기간 아빠가 원하는 격투기 훈련 받는 것이 나를 더 기쁘게 할 것 같아...그 비용은 아빠가 대겠으니...-그래 120만 내고 신청해, 어케?
2011년 6월 09일 목요일, 10시 54분 55초 +0900제목: RE: 답장:
영준아빠~ 많이 힘들구나~~미안해. 이정도로 힘들어 할 줄 몰랐어.
뭐라 할 말이 없네. 그래 당신말이 다 맞아.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고루한 내 생각만 주장했음을... 모든 것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음을 용서해줘.
처음시작은 그런 맘이 아니었어. 남한에서의 새로운 출발에 희망과 용기, 사랑을 심어주고 싶었는데....나의 이기적 생각과 욕망이 날 그렇게 만들었음을 시인해. 영준 아빠를 통해 많은 것에 눈을 뜨게하니 감사하네. 오늘 아침 기도하며 내 입술에 이런 찬양이.."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 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김정일과 00숙으로 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당신 표현...오죽했으면....모든 것이 내 뜻대로 할 수 없음을 시인해.
11/6/6 (월)에 이민복 <leejnk@hanmail.net>님이 쓰신 메시지:
2011년 6월 6일 (월요일) 오후 8:24
백령도에서ㅡ 상황 모두가 마치 풍선하는 것이 역적질 하는 것 같아(떠들고 하는 대국민사기꾼 풍선단체로 인한 민심 나빠져). . . 당신을 선두로 모두 자기 중심인 거고 . . . 나만 미친 거 같이 북한 북한. . .
모든 걸 포기하고 아무도 없는데 가 있고파 .
[후기]
이런 고난 속에서도 아직도 대북풍선을 포기 안 한 내가 자랑스럽다. 한편 이혼하면 안된다는 종교와 자녀로 묶여진 남북한 부부도 5년 쯤 살아보니 그냥 싫어지는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남북한 통일을 상상하게 된다.
가장 좋기는 개혁개방 중국정부와 같은 북한 정권이 들어서면
서로 갈라진 상태에서 교류하면서 지내보며 하나로 되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3대세습정권을 두고서는 교류자체가 안된다.
거짓말로 만든 3대세습이기에 개방하면 곧 죽기에 안되는 것이다.
당면 대북정책은 개혁개방을 못하는 3대세습 김정은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다. 그 길은 대북정보유입밖에 없다. 사람은 아는 만큼 행동한다. 총성분자였던 나도 남한삐라 한장에 목숨걸고 탈북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남한에 와서 내가 수혜 받은 그 삐라를 보내고 있다.
20260602
**아들을 왜 무전여행과 격투기를 시키려 했을까. 네개 나라 감옥과 국경을 넘으면서 온 나로서 요즘 아이들이 너무 편하게 자라나는 것이 우려스러웠다. 아빠처럼 우정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고생할 수는 없지만 무전여행과 격투기와 같은 체육을 통해 고난을 겪어 보아야 왜 공부를 해야 하는 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기 때문. <사람들은 죽을 고비 같은 고난에 처해지면 평상시 수십개 종합대학 이상의 능력이 나온다!>엥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