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달력에는 ‘휴일’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새벽에 시작해 밤늦게 끝나는 농장의 일과는 명절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3년 정도가 지났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믿었다. 지금처럼 묵묵히, 그리고 치열하게 일하면 언젠가 우리 가족의 삶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그 믿음 하나를 붙잡고 나는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끊어냈다. 친구도, 지인도, 내 삶의 평온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 멀리했다. 오직 농장과 가족, 그 두 가지만을 세상의 전부라 여기며 달렸다.
그것은 선택이자 고립이었다. 내가 할 일을 끝까지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관계라는 즐거움 대신 농장이라는 책임감을 택했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였던 모양이다. 오가는 대화가 사라진 농장에는 정적이 내려앉았고, 그 정적은 예민함과 고독이라는 이름의 그림자로 변해 나를 잠식했다. 텅 빈 마음을 채울 곳은 집뿐이었기에, 나는 아내에게 더 많이 기대고 바랐다. 하지만 그 애틋한 애착은 아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집착’으로 비춰졌을지 모른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었노라 항변하고 싶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나만의 일방적인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든다.
가끔 길가는 사람들을 보며 묻고 싶어진다. 5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외부와 단절된 채 일만 하면서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를 둘러싼 이들은 농사꾼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며 당연한 듯 말하지만, 그 ‘당연함’ 속에서 나는 조금씩 부서져 가고 있었다. 아내는 모임을 즐기고 여행을 떠나며 삶의 활력을 찾지만, 나는 오로지 일의 굴레 속에서 타들어 갔다. 후회는 너무 늦게 찾아왔다. 일에만 집착하지 않고 내 시간을 가졌더라면, 내 마음의 여백을 조금이라도 남겨두었더라면 이토록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가장 아픈 곳은 가족이었다. 아내는 과거의 사업 실패와 두 번의 파산면책 이력을 꺼내어 나를 몰아세웠지만, 나는 한 번도 헛된 곳에 돈을 쓴 적이 없었다. 오히려 생활비를 대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학원 시간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미안함은 어느새 죄책감이 되었고, 죄책감은 다시 연락을 피하게 만드는 벽이 되었다.
그러다 둑이 터지고 말았다. 허리 통증으로 신음하며 외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 아내의 술자리 소식은 나를 한없이 비참하게 만들었다. 내가 땀 흘려 번 돈으로 버티는 이 삶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만 하는 기계의 삶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 서러움이 폭발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진부한 경구가 내 삶의 비극이 되어 돌아왔다.
결국 자존심이 우울함을 이기지 못한 밤, 나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부탄가스를 켜고 술에 취해 잠들려 했던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살고 싶어 했다는 것을. 내 마음 한구석에 남은 미련, 그것은 어쩌면 삶을 향한 마지막 비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서로를 보듬기보다 자존심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더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는가. 떠나지 못한 미련이 있다면, 이제는 이 상처 위로 서로의 진심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바랐던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그리고 서로의 온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였다. 이제는 농장의 계절을 넘어, 그동안 잃어버린 우리 사이의 계절을 다시 찾고 싶다.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고맙다는 말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깊은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