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입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사실 조금 망설였습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철이 없다고 하실 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공감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결혼 15년 차입니다.
남편이 있고,
중학생 딸이 있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가정주부입니다.
주변에서 저를 보면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관리 잘하시네요."
"애 엄마 같지가 않네요."
"언니는 항상 옷을 예쁘게 입으시네요."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나이가 들수록 예쁘다는 말보다
"좋아 보인다"
"밝아 보인다"
라는 말이 더 귀해지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말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 남편입니다.
왜냐고요?
저는 미니스커트만 입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말 거의 매일 입습니다.
봄에도 입고,
여름에는 당연히 입고,
가을에도 입고,
겨울에는 스타킹 신고 입습니다.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는 좋아했습니다.
연애 초반에는 제가 뭘 입어도 예쁘다고 했습니다.
제가 치마를 입고 나오면
"오늘 진짜 예쁘다."
"다리가 길어 보인다."
"완전 연예인 같다."
별별 소리를 다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좋아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는 칭찬이니까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1년...
2년...
3년...
점점 남편의 말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안 춥냐?"
"감기 걸린다."
"긴 치마는 없냐?"
"오늘은 바지 입으면 안 되냐?"
그리고 결혼 10년쯤 지나니까...
"제발 사람답게 입어라."
까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이해가 안 됐습니다.
아니...
연애할 때는 좋다더니.
왜 결혼하니까 싫다는 건지.
그래서 어느 날 진지하게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내가 치마 입는 게 왜 그렇게 싫어?"
남편은 한참 동안 대답을 안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조용히 말했습니다.
"싫은 게 아니다."
"걱정되는 거다."
저는 더 이해가 안 됐습니다.
40대 중반 아줌마가 뭐가 걱정된다는 건지.
그래서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누가 날 보겠어."
그랬더니 남편이 바로 대답했습니다.
"그게 문제다."
"당신은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한다."
"근데 생각보다 많이 본다."
순간 저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남편은 틈만 나면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저도 포기를 안 한다는 겁니다.
작년 여름 일이었습니다.
백화점에 둘이 갔습니다.
원래는 딸 운동화를 사러 간 거였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제 눈에 치마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정말 예뻤습니다.
딱 보자마자 알았습니다.
"저건 내 거다."
그런데 제 옆에 있던 남편 표정이 점점 굳어졌습니다.
제가 치마를 집어 들자마자 말했습니다.
"안 된다."
"왜?"
"집에 비슷한 거 많다."
"안 비슷한데?"
"비슷하다."
"전혀 안 비슷한데?"
결국 둘이 치마 앞에서 말다툼을 했습니다.
판매사원분은 웃음을 참고 계셨고.
딸은 멀리서 모르는 척하고 있었고.
저는 결국 치마를 샀습니다.
집에 와서 입어봤습니다.
예뻤습니다.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옷장 앞에 서서
기존 치마와 새 치마를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10분.
20분.
30분.
그러더니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도대체 뭐가 다른 거냐."
저는 너무 웃겨서 쓰러질 뻔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웃긴 건 그다음부터였습니다.
남편이 어느 순간부터 포기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외출할 때마다 몰래 감시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방에서 옷 갈아입고 나오면
먼저 치마 길이부터 확인합니다.
"짧다."
"안 짧다."
"짧다."
"안 짧다."
결혼 15년 차인데 아직도 같은 대화를 합니다.
어느 날은 친구 부부와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밥 먹다가 친구 남편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형수님은 항상 스타일이 젊으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남편 표정이 굳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한마디 하더군요.
"봐라."
"내 말 맞지?"
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칭찬이잖아."
그랬더니 남편이 말했습니다.
"그게 문제다."
"당신은 칭찬 한 번 들으면 치마가 3cm 더 짧아진다."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조금 맞는 말 같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칭찬받으면 기분 좋잖아요.
저도 여자입니다.
예쁘다는 말 들으면 좋고.
잘 어울린다는 말 들으면 좋고.
관리 잘했다는 말 들으면 좋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걸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더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딸까지 가세했습니다.
외출 준비를 하는데
제가 새 치마를 입고 나왔습니다.
딸이 저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습니다.
"엄마."
"왜."
"엄마는 옷장에 바지 없어?"
"있어."
"근데 왜 안 입어?"
"안 예쁘잖아."
딸이 남편을 쳐다봤습니다.
남편도 딸을 쳐다봤습니다.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순간 너무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원래 딸은 엄마 편 아닙니까?
그날 이후 우리 집은
저 대 남편+딸
2대1 구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티격태격하면서도
남편은 항상 저를 챙깁니다.
외출하면 전화합니다.
"잘 갔냐."
"안 춥냐."
"언제 오냐."
비 오는 날이면 우산 챙기라고 하고.
추운 날이면 스타킹 더 두꺼운 거 신으라고 하고.
늦으면 데리러 오겠다고 합니다.
가끔은 생각합니다.
남편이 치마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제가 걱정되는 건 아닐까.
젊을 때는 몰랐습니다.
사랑은 설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잔소리도 사랑이고.
걱정도 사랑이고.
투덜거림도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치마를 입습니다.
남편은 오늘도 한숨을 쉽니다.
저는 오늘도 웃습니다.
남편은 오늘도 잔소리를 합니다.
그리고 아마 내일도 똑같을 겁니다.
10년 뒤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60살이 되어도.
70살이 되어도.
저는 치마를 입고 있을 것 같고.
남편은 옆에서
"안 춥냐?"
라고 물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혹시 저처럼 나이 들어도 절대 포기 못 하는 취향 있으신가요?
아니면 우리 남편처럼 배우자 때문에 매일 잔소리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문득 다른 분들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