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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실패에서 지켜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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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돌보며 넘어진 아이를 달려가 일으켜 세운 적이 있다.
아이쿠..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아무 생각없이 아이를 걱정하며 한 이 행동은 나에겐 사십 여년의 일상 중 아주 사소한 잠깐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며칠의 날 중 한번의 큰 사건이었으리라. 아이는 넘어진 후 이게 아픈건지, 울어야 할지, 손을 짚고 일어날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손에 일으켜 세워졌을 것이다. 그렇게 넘어진 후 스스로 일어날 첫번째 기회를 잃었다. 아이는 나의 사소한 행동으로 그만큼 더디 성장하진 않았을까?
어른들에게 쉽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고 놀라운 발견이다. 어쩌면 엄마가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혼자 넘어졌다 일어난 순간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 사실을 어른들이 안다면 깜짝 놀라며 돌보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거나 아이가 다치지는 않았을지 놀란 심장을 다독일테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이 아이에게는 더 큰 성장의 기회가 된다.
어른들은 자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하나하나를 간섭한다. 평생 아이를 따라다니며 하나하나 대신 해 줄 것이 아니라면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의 실패가 안타깝고 아플지라도 아이의 삶은 아이의 몫이다.
할 수 있다면 아이를 평생 따라다니며 지켜주고 싶다는 어른이 있을지도 모른다.
불가능합니다.
혹여나 가능하다 해도 인형처럼 타인의 손에 잡혀있는 수동적인 아이의 삶은 무척이나 불행할 거예요. 인간적인 삶이란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이 아닐까요.
이렇게 말하면 일부 부모들은 이렇게 되묻기도 한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지켜만 보라는 건가요?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낫겠어요.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이다. 그것이 아이의 경험과 선택, 실패를 빼앗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아이의 생명이 위협되지 않는, 치료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받지 않는 안전선은 필요하겠지. 낭떠러지 앞 몇미터 내에 안전선을 두르고 아이의 발달상태에서 넘기 어려운 바위를 잠시 치워준 후 마음껏 뛰어놀다 넘어지고 또 일어나는 모습을 바라보자. 사실 이런 바위들의 존재가 아이들을 키우기도 한다. 그저 열심히 뛰고 넘어지고 일어난 아이가 달려오면 힘껏 안아주자.
잘했어♥ 오늘도 많이 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