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넘실대는 고향 이야기 /안지현
온 동네가 분홍색 복숭아꽃으로 물든다. 시댁 가는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삼월 중순에서 오월 초 까지 꽃분홍색으로 물든 그 모습에 반해서 시집간 나는 수 십 년이 흐르는 동안 그 모습을 항상 그리워하며 시댁에 내려간다.
과수원을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멋도 모르고 과수원 한다는 남편의 말에 부러워서 따라 갔더니 과수원 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휴가도 못 가고 시댁으로 일하러 가는 게 여름휴가다. 하지만 나는 산중턱의 과수원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꽃분홍색의 복숭아꽃과 흰색의 배꽃 등 각종 과수 꽃들이 너무 아름다워 그 모습을 잊을 수 없고 바라만 봐도 힐링 되고 행복하다.
우리 과수원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복숭아, 사과. 자두, 살구, 체리, 포도 등 가족들이 먹고 싶어 하는 과일들을 골고루 심었다. 물론 과수원 일은 힘들지만 보람도 있다. 시집와서부터 농사일을 돕기 시작한 세월이 어느덧 40여년이 되어간다. 그래도 팔순이 훌쩍 넘으신 시어머님도 하시는데 안 도와드릴 수가 없다.
과일을 하나하나 만져보고 주문을 외우듯 이야기 한다 잘 자라달라고.
어머님 댁 담장에는 오월이면 넝쿨장미가 예쁘게 우거진다. 어머님은 늘어져서 지저분하다고 자꾸 베어 내고 꽃을 좋아하는 나와 그 문제로 실랑이를 한다. 시골집 담장에 피어늘어져 있는 넝쿨장미의 운치 있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가을이면 온 동네가 홍시 감나무로 붉게 물든다. 강원도에서는 구경을 못하던 풍경인데 경상도 쪽에서는 흔한 픙경이다. 이제는 벼농사 짓는 가정을 구경하기 어렵다. 평야지대가 아니고서는 논농사를 많이 안하는 것 같다.
시댁에서 풍경이 아름다운 꽃이라면 나의 고향 친정의 풍경은 한적하고 조용한 옹달샘 같은 곳이다. 겨울에 흰 눈이 내릴 때 온 마을이 하얗게 변하고 깨끗함 속에 고요하고 평온함이 있다. 강원도의 사계절은 확실히 다른 매력이 있다. 집 앞의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푸르름이 가을에는 오색의 화려한 단풍, 겨울에는 온 마을이 깨끗한 하얀 세상으로 그 위에 강아지발자국, 고양이발자국이 특히 정겹다.
내가 살던 친정집은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이었다. 비록 크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일곱 남매와 부모님과 복작거리고 살기에 더없이 행복한 곳이었다. 지금은 흔적이 없지만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면 온 동네 풍경이 다 보였다. 누구 집에 연기가 나는지 저녁을 하는지 다 알 수 있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온 가족 다 나와 길부터 쓸었다. 아랫집으로 다니는 길이 제법 걸어야했기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흙도 뿌렸다. 아버지는 항상 새벽부터 자식들 넘어질까 우리 학교 가는 길부터 쓸곤 하셨다.
객지에 나간 언니가 온다는 날은 동생들 모두 나와 집 앞 언덕에서 언니가 어느 길로 오는지 눈이 빠져라 기다리곤 했다. 그 다음은 내 차례 내가 사회생활하면서는 동생들이 나를 그렇게 기다렸다.
지금은 새로 터전을 옮겨서 그 집과 언니를 기다리던 언덕은 없어졌지만 그 향수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다. 새로 집을 크게 짓고 옮겼다. 이제는 눈길을 쓸어주던 아버지도 안계시지만 아버지대신 남동생이 대신 해주고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집 앞 느티나무다. 세월이 흐른 만큼 나무도 자랐다. 집 앞에는 버스정류장도 생겼다. 이젠 목 빠지게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데크가 만들어져 있어 오고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시끄러운 도시 한복판보다 정이 묻어나는 시골의 풍경이 한적하고 평화롭다.
시장에 복숭아가 생산되어 출하되어 나오게 되면 언제부터 인가 내가 작업한 어머님 이름이 박스에 적힌 박스를찾아보는재미도있다.이제 본격적인 복숭아 농사가 시작된다. 올해도 열심히 해서 어머님을 도와드려 수확의 보람을 느껴보려고 한다.
복숭아농사가 풍년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