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30대 초반부터 매년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했다. 첫 번째 한 달 살기를 시작하던 해, 자전거를 빌려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고, 허름한 옷차림의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나와 다른 삶을 사셨을 듯한 할머니가 나를 멈추게 했다. 6월의 태양은 뜨거웠고, 반팔 소매 아래 보이는 피부는 이미 벌겋게 달아올랐다. 뜨거운 태양 아래 나무에 기대어 앉아 귤을 굽고 계신 할머니의 모습은 낯설었고 이상하게도 느껴져 가만히 선 채 바라보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그것도 겨울에나 먹을 법한 귤을 굽는 모습은 나에겐 특이한 광경이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멍 때리 듯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귤을 내민다. 무심하게 내민 손끝의 귤은 발가벗겨진 채다. 아무 말 없이 귤을 입속에 넣는다. 생각보다 뜨겁지는 않지만 이런 낯선 상황에서 건네진 낯선 귤에 대한 예의로 ‘오 맛있는데’가 나올 만도 하건만, 이건 모지 ‘맛없다’ 아니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걸 왜 먹나 싶었지만 ‘음 맛있네요’라고 친절한 척 말하며 ‘귤을 왜 구워 먹어요’ 묻는다. 하귤이라고 하시는데, 하귤을 구웠다는 건지 여름에 먹는 귤이 따로 있다는 건지 서로 자세한 소통은 되지 않은 채 대화는 끝이난 듯하다. 대뜸 ‘혼자완?’ 물으신다. ‘네’ 하니 ‘여자 혼자 겁도 없지’ 라며 나를 힐끗 보신다. 각자의 할 일을 하겠다는 듯 나는 관광지 입구를 살펴보고 누가 집어가도 딱히 쓸데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짐이라며 자신을 지켜달라는 가방과 자전거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내게 또 한 번 무심한 듯 들어갔다 오란다. 자전거는 두고, 산신령 같은 기운을 느끼며 나도 무심하게 ‘네’ 하고 들어간다. 관광지를 돌아보고 나오니 여전히 앉아 계신 할머니,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가려는데 할머니도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저녁은 먹었냐고 묻는다. 먹으러 갈까 생각 중이라고 하니 따라오란다. 모지 이 시크함은 ‘따라가도 되나’라는 생각을 먼저 하겠지만, 전혀, ‘아싸 이게 왠열!’ 멀지 않은 거리를 뒤따라 걸으며 제주도의 전통가옥 같은 집을 예상하며 신났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좀 멀어 보인다. 너무도 익숙한 1층 벽돌집이 눈에 들어오며 실망을 감출수 없었다. 할머니는 도시 골목 어디에서 만나도 자연스러운 주택으로 들어가신다. 아무렴 어때 저녁 주신다는데, 식탁 위 올려진 양파김치는 정말 생양파에 고춧가루 얹은 듯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무슨 나물인지도 알 수 없는 초록이들로 한 상 차려진 밥상 위, ‘이것이 밥상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밥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아버지 고봉밥이다.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며 주로 이용한 식당에서 먹던 은빛 밥그릇과 대비되는 사기그릇은 왠지 정겹다. 아버지 고봉밥을 뚝딱 헤치우고, 그렇게 도시인 듯 도시 아닌 시골 같은 제주만의 감성을 느끼며 할머니와의 밥상 추억을 뒤로하고, 버리고 싶은 자전거를 이고 지고 난 또 떠난다. 여행하던 나는 지금 멈추어 있다. 멈춘듯한 이 순간은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한 멈추지 않은 소중한 순간들이며, 무언가의 멈춤은 또 다른 무언가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