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불안속에 살았다. 내 기억속에부모님은 많이 다투었고 난 어린동생들의 보모 역할을하며 .살다싶이했다. 아들이귀한집의 1남6녀의 둘째로 언니는 일찍 객지로 나갔고열두살때부터 동생들을 챙기며살아야했다.부모님은 농사일에항상바빴고 아이들은 나를 엄마 따르듯했다.
내위로 언니와 의사이에 아들하나가 있었는데 세살때 병으로 잃고 내가 태어났다고 사람들은 나보고 어린나에게 아들 잡아먹었다고 했다.그때는 그랬던적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난 부모님께 더 착한 딸이 되려고 항상노력하며 살았다. 부모님께 대들어본적 없고 엄마가 야단쳐도 그저 엄마가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하며 엄마를 이해하려 노력했다.그래도 아버지는 항상내 편이었다.남의일을갈때도 어린나를데리고가서 맛있는음식을 먹여주곤했다.워낙어려서 나는악했고 손만대도쓰러질것 같았기 때문에 신경이쓰였던모양이다.공부하다 잠들어도 살며시와서 이불을 덮어주고 가곤했다.그렇게 다정한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주사가 있었다. 전쟁고아로 자라서 의지할데 없이 산 세월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은것같아 속상했다.반면 귀하게자란 엄마는 그런아버지를 이해못해서 싸움을 하기일쑤였다. 동생들과나는 불안감과두려움에항상 맘편할날이 없었다.
가정형펀이 어려워 언니는 못가르쳤지만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니 언니한테 미안해졌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야언니한테보답하는길이라생각하고 열심히했다. 엄마는 처음보는 꼬부랑글씨에매일 만점받아오는 시험지를보며 신이났다.나도 덩달이 너무기뻤다.학년이 올라갈수록 고민이커졌다. 공부는계속하고싶은데동생이많아 더이상은 안된다는부모님의말이 즐겁던 나의 학창시절 꿈에 부풀었던 마음이 좌절되는순간이었다.그때부터더 열심히했다.언니가 고등학교는 나와야 한다고부모님을설득했고 중학교도못나온언니의말에 부모님의 마음이 움직이셨다.
끔에 그리던 고등학교에 갔다.내게숨은재주가있는걸 드디어발견했다.어려서부터 동시쓰기를 좀하고노랫말을 쓰는걸좋아해서 학교갔다집에갈때면 혼자흥얼거리고했는데 어느날 학교에서 전교생상대로 글쓰기대회를했다. 좋은성적을거뒀다.선생님은 "넌 문학전공해서 작가해라"하시는거다. 너무감사했다.누군가에게이런 칭찬 듣는 건 처음이었으니까.난교육대에가서 초등학교사가 되고싶었다.하지만 그꿈은 당장은형편상안되고 훗날 내가 벌어서 해야지 하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가정형편을잘 알기에...그뒤로는 글쓰기대회만 있으면 무조건 내가 상을탔고 학교복도에 나의작품들이 여기 저기 골고루 붙어있었다.공부를 잘하는것도좋지만 전교에서 글쓰기실력을 인정받는다는것이 너무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어느날친구가 엄마한테 나의 작품이야기를 했나보다. 집에오니 닥백숙에 잡채,내가좋아하는찐빵까지 온갖 요리들이 차려져 있었다.엄마는 우리딸 장하다며 등을 두드려주었다.이제껏엄마에게서 못받아본따뜻한 말한마디였던것같아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귓가에맴돈다.
작가가되라던선생님의말이 내겐큰힘이됐고 학교복도마다붙어있던 내글들의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아이들을키우면서 자랑도했다.그게 동기부여가되었는지아이들도 책도많이일고 글도 잘썼다. 아파서기억도가물거리는엄마는 지금도 그얘기를하며 즐거워한다.그때 네가 자랑스러웠다고 그때못시켜준 공부 미안하다고, 내가 그땐 엄마에게 희망을 준게 틀림없다.
나이들면서 뭔가를 다시시작한다는건쉽지않은일이다.나에게 용기를 주고 살면서 내가 언젠가는 꿈을이루리라는 희망의용기를 잃지않도록 용기를가질수있었던건 선생님의칭찬한마디였다.내가힘들 때 활력소가 되었고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그한마디가 그동안 내가 버티며 살아온 이유이기도했다.
사춘기시절 우울할수있었던 날들 선생님의칭찬한마디로인해 난 쓸모있는 사람으로사랑받을자걱있는사람이라는걸 깨닫게되고 자존감도생겼던것같다. 부정적인말은 안하고살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할수있다' '된다'라고 긍정 마인드로살려고 노력한다.
애들키우면서 다시 한다는게 쉽지않았고 장손 며느리로서 행사도많고 어른들보필하며 공부한다는건 더더욱 쉽지 않았다.이제 환갑이 넘어보니 여유가 생겼다.고등학교때 국어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살면서 '난언젠가 작가가될거야'라는 희망으로가슴속에품고 살았다.이제 그 품고있던꿈을 꺼내서 실천할테다.출판기념회를 하는 나를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