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올해 서른넷 직장인 남성입니다. 요즘 인생에서 가장 큰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아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대학 졸업반 때부터 6년을 만난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제 가장 찬란했던 20대와 취업 준비 시절의 암흑기를 묵묵히 지켜봐 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눈빛만 봐도 통하고, 같이 떡볶이만 먹어도 행복한, 제 인생의 전부 같은 여자입니다. 당연히 이 사람과 결혼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면서 현실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저도 평범한 직장인이고 여친은 프리랜서라 소득이 불안정합니다. 둘이 합쳐 모은 돈은 7,000만 원 남짓인데, 양가 부모님 모두 형편이 넉넉지 않아 결혼 자금 지원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돈으로 수도권에 단칸방이라도 구하려면 엄청난 대출을 받아야 하고, 앞으로 아이라도 낳으면 맞벌이도 힘든 여친의 수입 구조상 제가 평생 외벌이로 고독하게 짐을 져야 합니다. 숨이 막히더군요.
그러다 최근 부모님의 성화로 반강제적으로 나간 선 자리에서 서른둘의 약사 여성분을 만났습니다. 집안이 강남에서 건물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유복하고, 본인도 개업을 준비 중이라 경제력이 엄청난 분이었습니다. 장인어른 되실 분이 결혼하면 경기도에 아파트 한 채와 개업 비용까지 전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결혼만 하면 제 인생의 경제적 계급이 바뀌는 수준입니다.
그 여성분은 제가 성실해 보인다며 호감을 표시하고 있고, 저희 부모님은 "이런 기회 네 인생에 다시 없다"며 당장 6년 만난 여친과 정리하라고 난리이십니다.
문제는 그 약사 분을 만나면 정말 아무런 감정이 안 생깁니다. 대화는 겉돌고, 밥을 먹는 시간 내내 '내 여친이었으면 이 상황에서 이렇게 웃어줬을 텐데' 하는 생각만 납니다. 이 사람과 가족이 되고 부부 관계를 맺는 상상을 하면 숨이 턱 막히고 도망치고 싶어집니다.
사랑을 선택하자니 평생 돈에 시달리며 여친을 원망하게 될까 봐 두렵고, 조건을 선택하자니 영혼 없이 돈의 노예로 사는 것 같아 제 자신이 너무 쓰레기 같습니다. 솔직히 마음이 자꾸 조건 쪽으로 흔들리는데, 저 정말 나쁜 놈인가요? 선배님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인생 상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