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도 문제가 생기지만, 사실 더 힘든 건 집이다.
학교에서는 내가 직접 보지 못하지만, 집에서는 아이의 모든 행동을 그대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서럽고, 더 아프게 느껴진다.
첫째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몇 가지 반복적인 행동을 보였다. 누군가는 ‘문제 행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7세 무렵에는 손가락이나 옷을 빠는 행동이 있었다. 나는 이걸 무조건 막지는 않았다. 대신 기준을 나눴다.
집에서는 허용, 밖에서는 금지.
“엄마가 밖에서 손가락을 빨면 어떨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며 일부러 아이 앞에서 같은 행동을 해보기도 했다.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부끄러웠는지, 밖에서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에도 외부에서는 분명하게 제지했지만, 집에서는 완전히 막지 않았다. 그게 맞는 선택이었는지는 솔직히 아직도 확신은 없다. 다만 그때의 나는, 이 행동을 단순히 없애야 할 버릇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행동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졌다. 손톱과 발톱을 물어뜯는 행동, 그리고 팔의 솜털을 뜯는 행동까지.
특히 솜털을 뜯는 모습은, 솔직히 말하면 부모로서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밖에서 그 모습을 볼 때면 괜히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대응 방식은 바꾸지 않았다.
“이렇게 보이면 어떤 느낌일까?”
“밖에서 하면 어떻게 보일까?”
아이에게 계속 묻고, 때로는 내가 직접 따라 하며 보여주었다. 그리고 집과 밖의 기준은 계속해서 분명하게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팔이 심하게 붓는 일이 생겼다.
그날 이후로 아이의 행동에는 조금 다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그런 변화가 생겼는지는 나도 한참 뒤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또 하나 힘들었던 건 시간에 대한 불안이었다.
1학년 당시 아이는 시간 개념이 거의 없었고, 등교 시간이 다가오면 불안이 극도로 올라왔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날도 많았다.
그때마다 나도 같이 무너지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흔들리면 아이는 더 크게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눈을 맞추고 물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아이는 늘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묻고, 내가 대답했다. 지금 시간, 나가야 하는 시간, 시계의 긴 바늘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걸 매일, 반복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당장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더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 과정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그 반복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쌓이고 있는지, 그때는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히 달라지는 지점이 생겼다.
등교 시간마다 울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갑자기 온 것이 아니라, 아주 느리게, 그리고 조용히 찾아왔다.
나는 아직도 이 방법이 정답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이를 억지로 바꾸려 할 때보다, 스스로 알아차리게 했을 때 변화는 더 오래 남았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아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