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종갓집 며느리의 첫 추석명절 이야기
" 사과는 그렇게 깎는게 아니야! "
시집왔으면 시댁의 방식대로 과일을 깎아야 된다는 큰고모님의 그 말씀이..
마치 21세기에서 조선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하시는 어른들은 모두 자보다 한참 어른이신 분들이고.. 저는 이제 막 시집 온 대한민국의 네네봇 며느리일 뿐이지요.
가뜩이나 엄마가 제사음식할 때마다 힘드셔서 들어눕고, 부모님의 언성이 높이 오가던 명절 제사에 대한 기억도 좋지 않았기에.
친구들과도 종종 서로 시집가면 장손말고 둘째 아들에게 시집가고 싶다며 결혼에 대한 환상을 키웠지만..
제가 택한 남자는 첫째아들, 장손도 아닌 무려 박씨집안의 종손이었습니다.종친회도 하는 종갓집에 어른들이 많이 모일때는 한번에 100분도 넘게 오셔서 집안밖으로 어른들이 가득 들어서셔서 식사를 하셨다고 해요. ㄷㄷ
그 당시 시어머니의 노고를 진심으로 리스펙합니다. 심지어 명절 제사도 선산에 음식상을 머리에 이고지고 가셔서 하셨다고 하니... ㅜㅜ
분명 남편은 시댁 어른들이 좋은분들이라고 했는데, 음식도 청소도 어머니가 다 하셨는데,도대체 나는 뭘 했다고 이렇게 어깨와 승모근이 긴장되고, 자꾸만 힘이 빠지고 피곤한걸까요..ㅜㅜ
마치 명절날 운전도 음식도 다 내가 했는데 정작 쓰러져서 기절하는 건 강아지처럼 말이지요. ㅎㅎ
고모님에 이어 이번엔 둘째 백부님이 말씀하십니다.
" 커피 좀 타와봐라~ "
우리 엄마아빠의 간섭조차 싫어서 자취의 자유를 만끽하던 생활이 갑자기 그리워지네요.
커피도, 말씀도 어른들 모두 단 1마디씩만 하셔도 내겐 여러분이 말씀하시는거니.. ㅜㅜ
이럴줄 알았으면 우리 엄마아빠한테 커피 한번 타드리고, 어깨라도 주물러드릴걸.. 싶은 마음도 듭니다.
결혼은 한 남자와의 사랑만으로 행복해지는 일이 아님을, 그땐 어리석어 몰랐던 것 같아요.
더군다나 저는 현대의 며느리들처럼 명절에만 시부모님을 찾아뵙는 며느리가 아닌, 아예 시댁에서 신혼을 시작한 케이스였으니. 허허
거기다 시댁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사이가 좋아 명절에 잠시 인사하러 들르시는 게 아닌, 무려 2박 3일, 3박 4일을 함께 먹고 자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훈훈한 집이었습니다.
남자는 남자가 할 일이 있고,
여자는 여자가 할 일이 있다는 집안의 가훈? 에 따라 그 모든 식사, 간식, 술상은 시어머니의 몫이었으니..
어머니.. 도대체 종갓집 맏며느리로 어떤 인생을 사셨던 겁니까 ㄷㄷ
따뜻한 시어머니는 초보 며느리에게 최대한 일을 시키지 않으려 노력하셨습니다.
아마도 남편이 좋다고 데려온 첫번째 여자였기에, 또 조금이라도 고생시키면 바로 멀리 가버릴거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에 앞서 어머니부터가 종갓집 맏며느리의 삶을 살아야하는 나를 가엾게 여기셨기 때문인 듯 해요.
핵가족으로 살던 내가 종갓집의 명절을 지켜보는 게 쉽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말 '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바로..
(다음 이야기로 이어갈게요 ^^)
우리 역시 동물 친구들에게 쉽게 이야기 합니다.
(마치 시댁 어른들처럼요)
" 야, 네가 한게 뭐가 있다고 힘들어? 내가 너 사료값 버느라 더 고생해~ "
" 목욕은 내가 시켰는데 왜 코는 또리 네가 골고 자니? ㅋㅋ"
네, 서로 ' 입장 차이' 가 있는 것은
대한민국 며느리나 반려동물이나 큰 차이 없는 듯 합니다.
정작 며느리가 원하는 것은
고리타분한 간섭이 아닌 쓸데없는 말은 아끼는 인내임을, 어른들이 잘 모르시는 것처럼
반려동물이 정말 원하는 것은
사료도, 목욕도 아닌데 말이지요.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의 편의와 위생의 개념의 의해 '강요'를 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우리가 고생했다고 생색을 내곤 합니다.
(저도 과거에 그랬고요^^; 허허)
이번 명절 먼 길 운전하신 분들, 음식하신 분들 모두모두 고생많으셨고, 남은 연휴 힐링의 시간도 충분히 가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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